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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얘기가 다르지"…자국 우선주의에 까다로워지는 빅딜


입력 2023.01.25 11:51 수정 2023.01.25 11:51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새해 녹록치 않은 반도체 대형 M&A…규제당국 심사 강화 분위기

반도체 패키징 등 유망 기업 인수 필요…로봇·AI에서도 기회 찾아야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에서 현지 직원들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자료사진).ⓒ삼성전자

글로벌 반도체 기술 경쟁이 격화되면서 반도체 업체간 인수·합병(M&A)도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기술 독점 우려로 기업간 합종연횡에 반대해온 규제 당국들의 움직임이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기술 우위를 지속해온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은 반도체 설계(팹리스)·위탁생산(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지배력 확대가 시급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로봇 등 신성장 영역에 적극적으로 M&A를 추진해 첨단기술 확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25일 반도체 업계는 낸드플래시 반도체 세계 2위 업체 일본 키옥시아(구 도시바메모리)와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간 합병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고 진단한다.


낸드 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저장한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로, 키옥시아가 '원조'로 꼽힌다. 지난해 8월에도 WD는 키옥시아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업계는 반도체 '자국주의'가 갈수록 강화되는 상황에서 규제당국들이 심사 기준의 문턱을 계속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반도체 부흥'을 꾀하고 있는 일본 당국이 자국 유일의 메모리 기업을 미국에 넘기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WD-키옥시아 외에도 글로벌 반도체 기업간 '빅딜'은 수 년째 성사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초 미국 그래픽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암)을 인수하려고 했으나 미국·영국 등 주요국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당시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양사의 심각한 독과점 우려를 표명했었다.


같은 해 대만 글로벌웨이퍼스는 독일 반도체 기업 실트로닉 인수를 시도했으나 독일 정부에 가로막혔다. 대만, 유럽, 미국, 중국 등이 양사 결합을 승인했지만 독일 정부가 끝내 승인 허가를 내주지 않아 최종적으로 결렬됐다.


중국계 사모펀드 와이즈로드캐피털은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매그나칩 인수를 위해 2021년 당시 약 14억 달러(약 1조7000억원)을 투자하려고 했으나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우려한 미국 정부의 반대로 백지화했다.


해외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를 우려한 규제 당국이 기업 심사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다른 국가 기업들간 M&A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술 안보 좌우할 핵심 산업된 반도체…韓 기업 M&A 전략은

글로벌 기업간 반도체 합종연횡이 잇따라 무산되는 것은 반도체가 경제산업 성장동력 뿐 아니라 국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초격차 기술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경쟁국 및 경쟁기업에 유리한 상황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따라서 반도체 기업간 결합 심사는 이전 보다 까다로운 기준 아래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도체 기술 개발은 미·중 뿐 아니라 한국, 일본, 유럽 등 기술 강국에서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이 같은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형준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경우, 자체 시스템 반도체 개발 보다는 M&A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들 역시 이런 위기 의식을 갖고 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도체 M&A 환경은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2년 전부터 M&A에 대한 의지를 꾸준히 피력해왔다. 한종희 부회장은 지난해 1월 "완제품(세트)과 부품 모든 부문에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이달에도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해 '메가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다만 현재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주요 규제 당국이 메모리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가진 국내 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을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좋은 매물을 찾아 인수하고 싶어도 각국의 깐깐한 심사 기준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초격차 기술 확보에 나서려면 기술 독점 우려가 덜 미치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시간·비용 부담을 덜 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도체 분야의 경우, 팹리스(반도체 설계) 보다는 후공정(패키징)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반도체 제조와 설계를 모두 아우르는 것은 사업 확장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경쟁업체들이 기술 유출을 이유로 발주를 꺼릴 수 있다.


따라서 패키징 투자를 강화하는 것이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이득이라는 주장이다. 패키징은 제조된 반도체를 기판이나 전자기기 등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3D 패키지 등 첨단 패키징 기술을 활용하면 이전 보다 많은 데이터 양을 처리하고, 전달 속도도 높일 수 있다.


반도체 뿐 아니라 로봇,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에도 전략적 투자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첨단기술 확보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상식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반도체는 메모리에서 시스템으로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어 삼성, LG 등의 M&A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면서 "각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뿐 아니라 유망한 AI, 로봇업체 인수 등으로 첨단기술 확보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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