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수출통제 대상 품목에 HBM 추가…오는 31일부터 적용
로이터 "삼성 영향권…HBM 매출 20% 中서 창출"
中 기술 굴기 지속…韓, 차세대 메모리 개발 속도로 격차 벌려야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HBM(고대역폭메모리)으로 확대됐다. AI(인공지능) 가속기 등에 탑재되는 핵심 부품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이다. 이번 제재는 중국의 AI 반도체 개발을 막아, 궁극적으로 반도체 자립 속도를 늦추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중국 규제로 한국 반도체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진단한다. 중국향 HBM 공급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삼성·SK 등 국내 기업이 지속되는 미·중 갈등에서 살아남으려면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2일(현지시간) 관보를 통해 수출통제 대상 품목에 HBM 제품을 추가한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HBM 성능 단위인 '메모리 대역폭 밀도'가 제곱밀리미터(㎟)당 2기가바이트(GB) 보다 높은 제품을 통제하기로 했다. 사실상 현재 생산되는 HBM 스택이 이 기준을 충족한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이번 조치에 대해 "중국이 군사 현대화를 지원하는 데 사용할 자국 반도체 제조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무부는 이번 수출 통제에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했는데,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더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이 사용됐다면 수출통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미국 원천 기술에 의존하고 있어 삼성과 SK도 수출통제 적용을 받는다. HBM 수출통제는 이달 31일부터 적용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번 제재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교육원장은 "중국향 HBM이 있는 삼성전자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은 HBM 대부분을 엔비디아 등 미국에 공급하고 있다.
삼성은 구형 HBM 제품 일부를 중국 등에 공급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이 HBM 매출의 약 20%를 중국에서 창출하고 있다"고 했다.
이종환 상명대 교수는 "반도체 제재를 하지 않으면 중국의 반도체 수준이 한 단계 더 격상되므로 미 정부가 지금 시점에서 제재를 한 것"이라며 "중국이 리버스 엔지니어링(대상을 분해해 기술 원리 등을 분석하는 것)으로 HBM을 분석-분해해 자체 개발하려고 하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로 중국은 첨단 시스템 구축 등이 많이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제는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의 수출통제로 반도체 장비 등의 국산화가 불가피해자, 중국은 반도체 제조장비, 팹리스(반도체 설계), 후공정에 이르기까지 가치사슬 전반 국산화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D램 1위 업체인 CXMT(창신메모리)는 기존 허페이(Hefei) 외에 베이징을 중심으로 공격적으로 웨이퍼 생산능력을 증설중이다.
주력 제품인 레거시(범용) D램인 DDR4를 저가에 공급하며 전체 D램 가격을 깎아내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 11월 말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평균 가격은 1.35달러로 전월 보다 20.59% 급락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잠정실적 발표에서 "중국 메모리 업체의 레거시 제품 공급 영향으로 실적이 감소했다"는 설명자료를 내기도 했다.
HBM 양산에도 역량을 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는 CXMT가 2세대 HBM(HBM2) 라인을 구축, 양산에 나선 것으로 파악한다. 아직 삼성·SK가 만드는 5세대 HBM(HBM3E)과 견줘 기술 격차가 있지만, 최첨단 D램을 생산할 역량을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중국이 범용 D램 시장을 장악하고, 첨단 D램 기술 개발까지 격차를 좁힌다면 글로벌 메모리 시장은 크게 출렁일 수 있다. 김용석 원장은 "생각 보다 중국 D램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1등을 오랜 기간 유지해온 메모리 기업들이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 제재,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국내 메모리 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집중해 대체불가한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당장 HBM에서는 6세대 HBM(HBM4) 개발·양산을 서두르고, 미래 필수 기술로 꼽히는 CXL(Compute Express Link), PIM(Processing in Memory) 등에서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진단이다.
HBM 중심축은 올해 HBM3E 8단에서 내년 HBM3E 12단, HBM4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객사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공간을 더 확보할 수 있고 열 저항 효율도 개선시키는 하이브리드 본딩(Hybrid bonding) 등 후공정 기술 개발이 요구된다.
김용석 원장은 "차질없는 HBM4 양산이 1단계라면 CXL, PIM 등 AI 관련 메모리 기술 개발에도 성과를 내 중국과의 격차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빠른 연산반응 속도, 저전력 설계 등이 강점인 추론(Inference)용 반도체를 확장시키고,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 전략을 스마트폰 뿐 아니라 가전, 스마트홈, 자율주행차, 드론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제조 역량을 갖춘 메모리 기업들이 반도체 설계 전문 팹리스와 손잡고 AI 반도체 생태계를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