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집중투표제 도입 내달 23일 임시 주총 안건으로 확정
집중투표제가 도입 시 여러 소수 주주로 구성된 최윤범 회장 유리한 상황
한화·현대차 등 집중투표제 미채택…고려아연 안건에 찬성 여부 주목
고려아연이 내달 23일 임시 주주총회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제안한 가운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우군으로 분류되는 한화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화학이 해당 안건에 찬성표를 던질지 관심이다.
이들은 자사의 정관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배제하고 있어 고려아연 안건에 찬성할 경우 이율배반적 상황에 처하게 되는 만큼 결론을 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각 사가 공개한 IR 자료를 27일 분석한 결과 고려아연 주요 주주인 ㈜한화,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LG화학 모두 집중투표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다수의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 예정 이사의 수만큼 부여된 의결권을 1인에게 집중하거나 수인에게 분배해 행사하고 다득표순으로 선임하는 방식이다.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소유구조에서 실질적으로 무시될 수 있는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이를테면 주주총회에서 이사 5명을 선임할 경우, 1주당 5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며 주주는 특정이사 후보에게 집중적으로 5표를 몰아주거나 여러 명의 후보에게 분산해 투표할 수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임시이사회에서 고려아연 주주인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인 집중투표제 도입을 임시 주총 안건으로 확정했다. 유미개발은 고려아연에 대해 소액주주 보호와 권한 강화를 명분으로 이를 청구했다. 유미개발 이사회는 최 회장을 비롯한 가족들로 구성돼 있어 사실상 최 회장의 제안으로 볼 수 있다.
최 회장 측은 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통해 영풍·MBK파트너스가 추천한 신규 이사의 이사회 진입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영풍·MBK는 고려아연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해 임시 주총에서 이사 수를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풍·MBK가 의결권 기준 지분이 과반에 가까워 우세한 상황에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여러 소수 주주로 구성된 최 회장 측에 좀 더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 회장의 우군으로 분류된 한화그룹, 현대차그룹, LG화학의 집중투표제 찬성 여부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2022년부터 고려아연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사주 맞교환 등을 통해 현재 고려아연 지분을 한화는 7.75%, HMG글로벌은 5.05%, LG화학은 1.89%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해외 법인인 HMG글로벌은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 등이 설립한 법인이다.
이들 기업은 모두 집중투표제를 정관상 채택하지 않고 있다. 만약 이들이 최 회장 측이 내놓은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에 찬성할 경우, 소액주주 및 행동주의펀드 등으로부터 자사의 집중투표제 도입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있고, 거부할 명분이 약해질 수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2018년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로부터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 받았으나 ‘현실성 없는 요구’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세계적으로 도입한 기업이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상황도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삼일PwC거버넌스센터의 ‘2024 이사회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자산 5000억원 이상 코스피 상장기업이 올해 5월까지 공시한 보고서 기준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은 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로 한정해도 6%밖에 되지 않는다.
한편, 집중투표제는 최근 야권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 쟁점 사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재계는 집중투표자가 외국계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는 이유로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의무화를 반대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일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더라도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 정당한 주주의 지분적 권리를 침해함으로 오히려 주주 평등 원칙에 반하는 역차별이라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