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열리지 못했던 방송사 시상식들이 이번 설연휴 때 치러졌다. 2024 MBC 연예대상에선 전현무가 대상을 받았는데, 수상자들 중에 배우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멸티플레이어상 이장우, 남자 우수상 이이경, 핫이슈상 김석훈, 리얼리티 인기상 유태오, 리얼리티 베스트 엔터테이너상 최다니엘, 쇼 버라이어티 베스트 엔터테이너상 주우재, 시사교양특별상 김응수, 남자 신인상 구성환, 여자 신인상 최강희 등이 이번 MBC 연예대상에서 수상한 배우들이다.
배우 말고도 코미디예능 이외의 영역 출신 수상자들이 많았다. 쇼버라이어티 최우수 남자상과 올해의 예능인상을 받은 김대호는 아나운서이고, 리얼리티 최우수 남자상과 올해의 예능인상을 받은 기안84는 만화가다. 프로듀서 특별상의 붐과 키. 그리고 디지털콘텐츠상의 브라이언은 모두 가수 출신이다.
MBC 연예대상보다 먼저 치러진 2024 KBS 연예대상 때는 가수 수상자가 너무 많다는 논란이 일어났었다. 당시 사회자가 이영지, 이준, 이찬원으로 모두 가수였고 특히 이찬원은 축하공연에 이어 올해의 예능인상과 대상까지 수상하는 원맨쇼를 펼쳤다. 그밖에 리얼리티 신인상의 박서진, 쇼버라이어티 신인상의 카리나와 지코, 프로듀서 특별상과 베스트 팀워크상 그리고 올해의 예능인상 3관왕의 김종민, 리얼리티 최우수상 장민호, 디지털 콘텐츠상 정우 등이 모두 가수였다.
시상식 후 코미디언 변기수가 "그래도 코미디언 한 명은 줄 수 있지 않나. 가수들만 챙기는 연예대상"이라며 지코와 카리나가 쇼버라이어티 신인상을 수상하는 모습을 올려 논란이 벌어졌다. 최근 방송사 시상식들은 부문을 쪼개고, 새로운 부문을 만들고, 공동시상을 남발하는 식으로 마치 상을 난사하기라도 하듯 많은 이들에게 시상해왔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코미디언 출신에겐 한 개의 신인상도 없이 박서진, 카리나, 지코 등 가수 3명에게만 신인상을 시상하자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이렇게 연예대상에서 가수와 배우들이 잇따라 주인공이 됐다. 아나운서, 만화가, 운동선수 등 비예능인들도 약진했다. 반면에 과거 연예대상의 주인공이었던 희극인 출신 예능인들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예능계를 주도하는 이경규, 김국진, 김용만, 서경석, 유재석, 강호동, 남희석, 신동엽, 박명수, 박수홍, 김구라, 이수근 등은 희극인 출신으로 2000년대 초까지 자리 잡은 예능인들이다. 이들이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말하자면 초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를 잇는 희극인 출신 예능인들이 약하다는 점이다.
예능계 흐름에 대격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과거엔 어떻게든 웃기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예능의 지상목표였다. 그렇다보니 웃기는 상황극에 몸을 아끼지 않는 희극인들이 예능을 주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리얼리티의 시대다. 억지로 상황을 만드는 걸 시청자들은 작위적이라고 느낀다. 상황극이 장기인 희극인들의 예능 입지가 축소됐다.
작정하고 웃기려는 희극인보다 가수나 배우들의 언행이 더 리얼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선 대체로 비희극인들이 활약한다. 작위적이지 않은 모습에서 인간미도 느껴진다. 기안84의 기행이 희극인이었다면 그렇게 호응 받지 못했을 것이다. 만화가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리얼하게 느껴졌고 시청자가 인간미를 느꼈다. 이젠 진솔함에서 우러나는 인간미가 웃음 이상으로 중요해졌다. 예능이 웃음만을 추구하지 않게 되니 리얼리티가 아닌 여타 예능프로그램들에서도 비희극인의 입지가 강화됐다.
어떤 사람이 웃기지 않아도 그에 대해 대중이 호기심만 가진다면 그 사람의 평소 생활, 지인 관계, 부모와의 관계, 부부관계, 자녀의 모습, 요리하고 먹는 모습 등이 모두 예능이 되는 시대다. 웃기는 능력보다 대중의 호기심을 이끌어낼 스타성이 더 중요해졌다. 사적인 노출이 많지 않던 배우들이 그래서 예능 주역이 됐다. 운동선수도 이런 경우다.
일부 가수들은 배우보다 더 예능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경향이 있다. 노래라는 특성이 버라이어티 장르와 잘 맞기도 한다. 요즘엔 아이돌 양성 과정에서부터 예능력을 키우기도 한다. 가수들 중에선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다. 아이돌과 트로트 스타들은 팬덤을 몰고 다니며 프로그램 화제성이나 시청률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가수가 예능의 주요 인력풀이 됐다.
이러니 연예대상에서 가수와 배우들이 주인공처럼 부각된 것이다. 리얼과 스타를 원하는 흐름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리얼한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미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스타들이 계속 예능 중심을 지킬 전망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