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놀라운 인기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월 1주 차 TV-OTT 드라마 부문 화제성 조사에서 지난 주에 이어 1위 자리를 지켰고,넷플릭스 공식 집계 사이트 ‘톱10 투둠’에선 공개 3주차(2월 3~9일)에 540만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로 글로벌 TV쇼(비영어) 부문 2위를 차지했다.
공개 1주차엔 470만 시청 수로 글로벌 TV쇼(비영어) 부문 3위였다. 2주차에 1190만 시청 수로 ‘오징어 게임 2’를 제치고 해당 차트 1위를 기록했고 3주차에도 2위에 머무른 것이다. 이 작품은 전 회가 한 번에 모두 공개됐기 때문에 TV 드라마로 치면 이미 종영한 상태다. 끝난 작품이 3주가 되도록 최상위권을 유지한다는 건 그만큼 인기가 뜨겁다는 이야기다.
공개 3주차 기준 한국, 홍콩, 인도네시아, 대만, 베트남 등 8개국 넷플릭스 TV쇼(비영어) 부문에서 1위에 올랐고 41개국에서 10위 권에 들었다. 서양인들이 이 작품에 울고 웃으며 몰입하는 반응 영상들도 올라오고 있다.
작품이 뜨자 주연인 주지훈도 떠서 그의 전작들이 일제히 차트에 재진입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디즈니플러스에서 그가 출연한 ‘조명가게’와 ‘지배종’이 ‘오늘 한국의 TOP10’ 2, 3위를 지키고 있고, 웨이브 오리지널 영화 ‘젠틀맨’은 웨이브 ‘오늘의 TOP 20’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에선 영화 ‘비공식 작전’과 SBS 2015년작 ‘가면’이 각각 넷플릭스 대한민국 TOP10 영화 부문과 시리즈 부문에 진입했다. 이 정도면 가히 열풍이라 할 만하다.
‘중증외상센터’는 웹소설·웹툰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를 영상화한 작품으로, 전장을 누비던 천재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에 장관 낙하산으로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방영 전에는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의사가 주인공이니 당연히 환자의 안위만 생각하면서 헌신적으로 의료 행위를 하는 모습이 나올 텐데 지금 시점에서 그게 국민의 공감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료대란 문제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공개되자 모든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고 대형 히트작이 되었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은 건 기본적으로 이 작품이 재밌기 때문이다. 매우 재밌게 잘 만들었다. 원래 회당 60분 분량이었는데 47분으로 줄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주 빠르게 진행된다. 지루할 틈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의료물은 긴박하게 마련이다. 사람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이 수시로 닥치기 때문이다. 칼 들고 수술하는 모습 자체가 치고받는 장면 이상으로 몰입을 이끌어내는 액션씬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도 그렇게 긴박한 수술 장면을 ‘중증외상센터’는 더욱 강도 높게 그려냈다. 헬기나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초응급 시술을 한다든지, 3명의 위급 환자를 동시에 살리는 것과 같은 설정으로 긴박성을 대폭 올린 것이다. 거기에 적절한 코믹도 잘 배합됐고 연기나 만듦새도 최상급이다.
주인공이 외상의 모든 걸 해결하는 초인 영웅이다. 아무리 복잡한 상황이라도 간단히 정리해내고 심지어 헬기를 직접 몰면서 절벽 타기까지 한다. 문제 상황에서 진행이 막히는 ‘고구마’ 없이 한 방에 뻥 뚫어주는 쾌감이 있다. 요즘 일부 일일/주말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악인에게 몇 달 동안 당하면서 시청자를 답답하게 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주인공이 전형적인 착한 캐릭터가 아니란 점도 통쾌함을 배가시켰다. 언제나 겸손하고, 오해받으면서 묵묵히 일만 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자기자랑에 주저함이 없고, 미디어를 이용해서 방해자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권력의 뒷배를 믿고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답답하게 마냥 착하기만 한 주인공이 아니어서 더욱 유쾌상쾌통쾌한 작품이 된 것이다.
주인공이 초인적 존재, 즉 판타지적 영웅이기 때문에 사전 우려와는 달리 의료대란 이슈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어차피 현실에 없는 의사라는 것이다. 반대로 주인공이 질타하는 극중 병원의 모습이 한국 의료계의 실상으로 인식되며 주인공에 대한 절대적 지지가 나타났다. 주인공이 시청자를 대신해서 의료계에 경종을 울리는 구도다.
해외에서도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크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의료 시스템이 외면한다는 불신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의료가 공공복지처럼 제공되는 나라에선 서비스가 너무 부실하고 느리다는 불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차별 없이 모두에게 신속한 치료가 최우선이라는 ‘중증외상센터’의 메시지에 다른 나라에서도 공감이 나타난다.
특히 한국에선 중증외상 치료가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다. 이 드라마 주인공의 모티브인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은 외상외과 환자들이 대부분 가난한 이들이어서 병원 수익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홀대받는다고 했었다. 그런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더욱 환영받는다.
의료 드라마가 그동안 많았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주목 받기가 어려울 것 같았는데 이렇게 또 히트작이 나오면서,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의료현장은 역시 마르지 않는 샘 같은 드라마 소재라는 점이 확인됐다. 그런 소재를 최고의 완성도와 대중의 속을 뚫어주는 시원한 설정으로 버무려내니 대박이 터진 것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