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지분정리' 압박 직면 삼성생명 복잡한 속내
금융위 통합감독 방안에 보험업법 개정안까지 이중고
매각 불가피 전망…그룹 지배구조 핵심인 탓에 '고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둘러싼 압박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최근 내놓은 금융그룹 통합감독 방안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이른바 삼성생명법 모두 삼성생명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문제 삼고 정리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해당 지분은 이건희 회장-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인 탓에 삼성생명을 넘어 삼성그룹 차원의 고민이 되고 있는 분위기인 가운데 최근 삼성전자가 결정한 액면분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7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5조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예금·대출을 하는 금융사나 증권·보험사 등 2개 이상의 금융권역에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집단을 대상으로 한 금융그룹 통합감독 제도가 오는 7월부터 1년 간 시범 운용된 뒤 내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 제도는 금융 계열사가 다른 비금융 계열사의 부실로 인해 같이 위험해질 가능성을 평가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를 두고 삼성생명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보유하고 있는 다수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들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삼성전자(8.5%)와 호텔신라(7.7%), 에스원(5.4%), 삼성중공업(3.3%), 삼성물산(0.1%) 등의 계열사 주식을 가지고 있다.
삼성생명이 이 같은 구조를 유지한다면 금융그룹 통합감독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 것이란 예상이다. 금융그룹 통합감독 제도 상 삼성생명과 같이 복잡한 지분 구조는 계열 간 위험 전이 수준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적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그룹 통합감독 제도는 기업집단 동반부실위험 평가 기준으로 ▲신용공여·주식취득 ▲내부거래 ▲지배구조 ▲평판리스크를 들고 있다.
이에 따른 위험도가 높다면 금융사는 만약의 경우에도 손실을 흡수할 수 있도록 자본을 더 쌓게 하거나 의존도를 축소하도록 의무화된다. 삼성생명이 금융그룹 통합감독 시행에 앞서 보유 지분 정리에 나설지 주목되는 배경이다.
더불어 정치권의 움직임도 이런 기류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보험사 자산운용비율 평가 기준을 은행·증권업계처럼 시가로 변경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이 가진 주식들 중에서 단연 눈길이 쏠리는 부분은 덩치가 가장 큰 삼성전자 지분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2%는 취득원가 기준으로 5000억원 대다. 그런데 현재 유가증가증권 시장에서 거래 중인 삼성전자의 주식 가격으로 계산하면 이 지분의 가치는 25조원을 넘어선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사가 가진 계열사 유가증권 평가 기준이 취득원가에서 시가로 바뀌게 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정리는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보험업법 상 보험사는 보유한 계열사의 유가증권 비중이 총 자산의 3%를 넘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의 지난해 말 기준 자산은 283조원 정도다. 이에 대비한 보유 삼성전자 지분 비중은 취득원가 적용 시 0.1% 수준에 불과하지만, 시장 가치를 대입하면 순식간에 10%에 육박하게 된다.
삼성그룹 입장에서 문제는 삼성생명이 들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이 총수 일가 지배구조의 핵심 축이라는데 있다. 삼성전자의 주주들 가운데 단일 주주로 최대 지분율을 기록하고 있는 곳이 바로 삼성생명이다. 이어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20.8%)이다. 즉,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율 축소는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금융권에서 이런 지분 구조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돼 왔다. 특히 보험업법 개정 움직임에 이 같은 걱정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번에 금융당국의 통합감독 방안까지 이에 궤를 같이 하면서 삼성생명에게 삼성전자 지분 정리는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다가온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최근 삼성전자의 주식 액면 분할이 이에 대한 지원사격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달 31일 주식을 50대 1로 액면 분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의 주식 수는 현재의 50배인 64억2000만주로 늘어나는 대신 주가는 50분의 1로 낮아진다.
최근 삼성전자의 주가가 250만원을 넘어설 정도로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액면 분할로 매수 문턱은 상당히 낮아지게 됐다. 이에 주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다. 삼성전자 주가 상승은 삼성생명 입장에서 보유 지분 매각 현실화 시 호재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액면 분할 결정이 금융당국의 통합감독 방안 발표와 같은 날 이뤄졌다는 점은 이런 측면에서 더욱 이목을 끄는 요소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통합감독 방안 발표로 좀 더 그 시기가 앞당겨지는 모양새일 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정리는 시간문제로 여겨져 왔다"며 "어차피 팔아야 할 주식에서 더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주가 상승은 삼성생명에게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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