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대선후보 경선 때 '박스떼기' 주고받으며 난타전
손학규 민주당 대표되자 이해찬은 탈당, 정동영은 '흔들기'
협치 잘될까… 정동영 "평생 이해찬 덕 본건 이번이 처음"
李·孫·鄭, 20여 년 정치역정에 서로 덕 주고받은 적 없어
11년 전 대선후보 경선 때 '박스떼기' 주고받으며 난타전
손학규 바른미래당 상임고문이 9·2 전당대회의 가장 유력한 당권주자로 부상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나선 이해찬 의원,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 3자 간의 '정치적 인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손 고문과 이 의원, 정 대표는 오랜 기간 정치를 했지만 "서로 상처를 준 적은 많아도 이렇다하게 덕을 주고받을 계기는 없었다"고 한다.
정치 입문이 가장 빠른 인물은 이 의원이다. 이 의원은 1988년 13대 총선 때 평민당 공천을 받아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민정당 김종인·민주당 김수한 후보를 꺾고 당선되며 제도권 정치를 본격화했다. 올해로 강산이 세 번 변한다는 30년 정치인생이다.
손 고문은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해 '대통령이 불렀다, 개혁 위해 나섰다'는 슬로건으로 경기 광명을 재선거에 나서 당선됐다. 올해로 정치인생은 사반세기, 25년이다.
정 대표는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발탁해 전북 전주덕진에 출마, 89.9%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되며 정치역정을 화려하게 시작했다. 정치입문 22년차다.
세 사람이 가장 세게 맞붙었던 때는 11년 전인 2007년이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에 나란히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3자 간의 경선은 정 대표가 1위(43.8%)를 하며 손 고문(34.1%)을 제쳤다.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과 '친노 단일화'까지 했던 이 의원은 3위(22.2%)에 그쳤다. 세 사람은 경선 과정에서 '선거인단 명부 박스떼기', '선거인단 카풀 차떼기' 의혹 등 격렬한 네거티브 공방을 주고받으며 앙금을 쌓았다.
정동영이 대선후보되자 이해찬이 '쓴소리'
손학규가 당대표되자 정동영이 '발목잡기'
정 대표가 대선후보로 선출되자 이 의원은 '형식상'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정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선긋기'를 하려는 것과 관련해 이 의원은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정 대표가 박상천 전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을 흡수통합하고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와 단일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비판했다. 선대위원장이 후보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대선이 정 대표의 참패로 끝나고 손 고문이 나서자, 이번에는 이 의원과 정 대표가 손 고문 '상처내기'에 앞장섰다. 손 고문이 이듬해인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의 새 대표로 선출되자마자 이 의원은 "손학규 대표가 이끄는 당은 정체성도 없이 좌표를 잃은 정당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당을 뛰쳐나가버렸다.
손 고문 '흔들기'에는 정 대표도 뒤지지 않았다. 2010년 민주당 10·3 전당대회에서 손 고문이 42.7%로 대표가 되자 2위(38.7%)로 수석최고위원이 된 정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사사건건 손 고문과 충돌했다.
2011년 7월 손 고문이 방일했을 때 "북한의 개혁·개방은 지지하되, 세습체제나 핵개발을 지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하자, 정 대표는 귀국 직후 "그럼 햇볕정책은 원칙 없는 포용정책이란 말이냐"고 발끈했다. 두 사람은 공개 회의 석상에서 '종북 진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주고받으며 난타전을 벌였다.
8월에는 정 대표가 무상복지를 위한 부유세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자, 손 고문은 "차후 보편적 무상복지 재원조달 방안 기획단 회의에 정 최고위원이 참석해서 문제 제기를 하면 좋겠다"고 말을 잘랐다. 그러자 두 사람은 다시 "왜 입을 틀어막느냐" "언제 입을 틀어막았느냐"고 고성을 주고받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단일후보 경선을 계기로 손 고문이 대표 전격 사퇴를 선언한 것은, 임기 내내 계속된 정 대표와 천정배 민주평화당 전 대표(당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3위로 최고위원 입성)의 '흔들기'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서로 좋은 기억 없는 세 사람, 당 이끌면 협치 잘 될까
정동영 "평생 이해찬 덕 본건 처음… 선배도 덕 봤으면"
'애증의 과거'를 갖고 있는 세 사람이 각각 당대표로 정치권 전면에 복귀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공교롭게도 11년 전 일합을 겨뤘을 때는 정 대표가 가장 앞섰고 손 고문이 뒤를 쫓고, 이 의원이 3위를 했었지만, 지금은 이 의원이 거대여당의 대표를 노리고 있고 손 고문이 제2야당, 정 대표가 가장 작은 제3야당 대표를 맡게 되는 등 처지는 거울에 비춘 듯 뒤집혀버렸다.
서로 상처만 주고받았던 세 사람이 각각 당을 이끌게 되면 과연 협치(協治)가 잘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 섞인 시선도 적지 않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세분 모두 20년 이상 정치를 하면서 정치 9단까지는 아니더라도 7~8단 경지에는 오른 분들"이라며 "'정치는 생물'인데 과거 일 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허허 웃으며 국사를 함께 논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대표도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평생 이해찬 덕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과거 서로 좋은 인연이 없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면서도 "내가 대표가 됐으니까 선배도 조금 덕을 봤으면 좋겠다"고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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