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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해?] 봉준호라는 장르, 놀라운 진화…'기생충'


입력 2019.05.29 09:04 수정 2019.05.29 09:04        부수정 기자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봉준호·송강호 세 번째 호흡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그린 '가족 희비극'이다. ⓒ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연출 영화 '기생충' 리뷰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황금종려상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었다.

28일 국내 언론에 공개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탄탄한 이야기, 쫄깃한 전개, 예측할 수 없는 서사로 관객을 '꽉' 붙든다. 막대한 물량 공세를 퍼부은 해외 블록버스터가 아닌데도 131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런 작품을 자막 없이 볼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영화는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상류층 집안과 반대로 빛도 안 들어오는 반지하에 사는 두 가족을 강렬하게 대비한다. 볕이 안 드는 어두컴컴한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가족. 기택을 비롯해 아내 충숙(장혜진), 아들 기우(최우식), 기정(박소담) 등 가족은 모두 '전원백수'다.

공짜 와이파이 공간을 쓰려 이리저리 찾아다니는가 하면, 알바 하나 구하려고 고군분투한다. 우울할 법한 상황이지만 이들은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남 기우는 명문대생 부자 친구의 소개로 부잣집 고액 과외 면접을 볼 기회를 얻는다. 네 번의 대입 실패 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기우는 어렵게 잡은 면접에 합격하려 가짜 재학증명서를 들고 박사장(이선균)네 과외 면접을 보러 간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그린 '가족 희비극'이다. ⓒCJ엔터테인먼트

고정수입이 절실한 온 가족의 희망을 안고 박사장네 집에 들어선 그는 과외 학생 다혜(정지소)와 박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다혜의 동생 다송(정현준)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연교를 본 기우는 동생 기정을 다송의 미술 과외선생으로 추천한다. 물론, 학력, 혈연관계 등 모든 걸 속이고 말이다.

하지만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 법. 기우와 기정은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기택과 박사장네 가족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휩싸인다.

영화 속 박 사장네와 기택 네는 부모와 자식으로 이뤄진 가족이다. 봉 감독의 전작과는 차별화되는 가족 구성원이다. 똑같은 4인 가족이지만 형편은 전혀 다르다. 박 사장네는 여유롭게 사는 상류층, 기택 네는 반지하에 살며 끼니 걱정을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일상에서 만날 일이 없어 보이는 두 가족은 '과외'를 통해 서로 만난다.

'기생충'은 극과 극 두 가족을 통해 보편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바로 빈부격차, 계급 사회다. 봉 감독은 '반지하'라는 특수 공간을 통해 계급 사회를 나타내는데 이는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누구나가 공감할 만한 화두다.

봉 감독이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이번에도 반짝반짝 빛난다. 그는 '살인의 추억'(2003)을 통해 암울한 사회상과 시대적 모순을, '설국열차'(2013)로는 부와 권력에 따라 서열화된 계급을, '옥자'(2017)에선 공장식 축산 시대 속에 고통받는 동물 문제를 꼬집었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그린 '가족 희비극'이다. ⓒCJ엔터테인먼트

이번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상반된 삶을 차갑게 바라본다. 사회 밑바닥에 깔린 불안과 공포를 포착하는 눈썰미도 뛰어나다. 요즘 청년들을 대표하는 기우와 기정이 불안해하는 모습, 냄새 난다고 수군거리는 박 사장네를 바라보는 기택의 눈빛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영화의 배경도 흥미롭다. 공간은 두 가족을 가르는 계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직 구조, 계단 등이 대표적이다.

무거운 주제를 마냥 무겁지 않게 풀어낸 솜씨도 뛰어나다. 살기 막막한 기택 네 가족은 심각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 툭툭 내뱉는 대화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박 사장네 가족은 어떤가. '사모님' 은교는 깨알 웃음 포인트다. 겉으론 고고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알맹이' 없는 사람이다. 똑똑한 척 하지만 사람을 잘 믿고 속아 넘어간다.

이들 모두 누군가를 해하는 '악인'은 아니다. 이들이 공생, 상생할 수 없는 건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부자와 가난을 나누는 사회에서 '함께 잘 산다'는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리 형편이 다르고 다른 삶을 살지라도 지켜야 할 요소는 인간에 대한 예의, 존엄, 존중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그린 '가족 희비극'이다. ⓒCJ엔터테인먼트

블랙코미디를 던지며 촘촘히 나아가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예기치 못한 결말에 다다른다. 스릴러 같은 서스펜스가 더해지며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

봉 감독은 이전 작품보다 더 놀라운 진화를 보여준다. 역시 봉준호라는 찬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봉준호'라는 이름 자체가 장르가 된 것이다.

송강호, 최우식, 조여정, 장혜진, 이선균, 박소담 등 배우들은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송강호는 이번에도 송강호였다. 분량이 많은 최우식은 극적 변화를 겪는 기우를 매끈하게 연기했다. 특히 조여정은 캐릭터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유롭게 연기한다.

봉 감독은 "우리가 늘 마주하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다루고 싶었다"며 "풍부한 희로애락을 지닌 배우들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 양극화를 떠나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을 건드리고 싶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느 정도까지 지키냐에 따라 기생과 공생이 나뉘는 듯하다"고 강조했다.

5월 30일 개봉. 131분. 15세 관람가.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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