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SUV다운 넓은 실내공간…퍼포먼스도 수준급
자동으로 차선변경까지…진일보된 자율주행 성능
튀지 않는 외모지만 '팔콘 윙' 펼치면 시선집중
대형 SUV다운 넓은 실내공간…퍼포먼스도 수준급
자동으로 차선변경까지…진일보된 자율주행 성능
튀지 않는 외모지만 '팔콘 윙' 펼치면 시선집중
요즘 자동차 업계 최대 이슈는 ‘친환경’과 ‘자율주행’이다. 기술적 노력과 막대한 비용은 물론, 각종 규제와 부족한 인프라까지 골치 아픈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기에 자동차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친환경 파워트레인과 자율주행 기능이 장착된 차를 출시하고 있다.
‘친환경’과 ‘자율주행’이 현재와 미래에 반쯤 걸쳐진 이슈라면 현실적인 이슈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다. 덩치가 크건 작건 일단 땅바닥에 달라붙어 다니는 차는 인기가 없다. 무조건 키를 키워 SUV라는 이름을 달아 내놓아야 한다.
이 세 가지 이슈를 한꺼번에 충족시키는 자동차가 있다. 바로 테슬라 모델X다. 테슬라는 전기차 하나만큼은 전통적인 자동차업체들도 한수 접고 들어가는 브랜드인데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가장 급진적인 시도를 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테슬라 모델X는 이 회사에서 내놓은 첫 번째 SUV다.
최근 테슬라 모델X를 몰고 서울 청담동에서 충남 당진시 한진포구까지 왕복 약 210km를 시승해봤다. 시승 차량은 성능을 다소 타협한 대신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를 늘린 ‘롱레인지(Long Range)’ 모델로, 0-100km/h 도달 시간은 4.9초, 주행가능거리 468km의 성능을 지녔다.
참고로, 달리기 성능에 초점을 맞춘 ‘루디클로스 퍼포먼스(Ludicrous Performance)’ 모델은 0-100km/h 도달 시간이 3.0초로 SUV로서는 경이로운 퍼포먼스를 내는 대신, 주행가능거리는 353km로 상대적으로 짧다.
◆"날씬해 보인다구? 이래봬도 팰리세이드보다 거구야"
테슬라 모델X의 탑승 정원을 확인한 뒤 실물을 처음 본 이들은 십중팔구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저 아담한 차에 어떻게 7명이 구겨 타지?”
하지만 막상 타보면 3열로 배치된 좌석이 결코 무리한 구성이 아니라는 점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운전석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도 2열 좌석에 넓은 레그룸을 제공할 수 있고, 3열 좌석 역시 (앉은)키가 커 높은 천장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성인 2명이 앉기에 불편함이 없다. 그 뒤쪽으로 트렁크 공간도 넉넉하게 마련돼 있다.
제원을 살펴보니 국산 대형 SUV 중에서도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보다 오히려 테슬라 모델X가 더 크다. 전장(5050-4980mm, 이하 테슬라 모델X-팰리세이드 순)은 물론, 전폭(2000-1975mm), 축거(2965-2900mm)까지 모두 테슬라 모델X가 팰리세이드보다 길고 넓다. 팰리세이드가 앞서는 것은 전고(1625-1750mm) 뿐이다.
다시 나와서 외양을 살폈지만 저게 대체 왜 팰리세이드보다 더 큰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눈의 착각을 불러온 것은 테슬라 모델X의 SUV와 쿠페를 결합한 크로스오버 스타일이다. 근처에 크기를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다면 영락없이 전고만 조금 높은 패스트백 쿠페다. B필러 상단을 정점으로 완만하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과, 앞뒤 오버행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축거를 늘린 디자인이 테슬라 모델X의 거대한 덩치를 비율 그대로 축소해놓은 듯한 시각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이는 넓은 실내공간을 원하면서도 둔해 보이는 것은 꺼리는 소비자들에게는 상당한 선호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주변을 압도하는 육중한 자태가 좋아 대형 SUV를 선택하려는 이들에게는 아쉬울 만한 부분이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의외로 얌전하다. 친환경을 지향하는 차들이 흔히 그렇듯 “나 최첨단을 달리는 차량이오”라고 과시하는 듯한 디자인 요소는 딱히 찾아볼 수 없다.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이 있어야 할 부분이 막힌 정도가 전기차임을 드러내주는 요소다. 오히려 도로에서 이런저런 차들과 뒤섞여 있어도 딱히 눈에 띄지 않아 아쉬울 정도다.
하지만 달리기를 멈추고 도어, 특히 뒷문을 열면 상황은 달라진다. 마치 새가 날개를 펼치듯 좌우에서 ‘팔콘 윙’ 도어가 위로 솟아오르면 테슬라 모델X는 어떤 차보다도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주위 시선을 잡아끈다(솔직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뒷좌석에 놓았던 가방을 꺼내기 위해 팔콘 윙을 열기보다 앞좌석에서 몸을 젖히는 쪽을 택하기도 했다).
사실 팔콘 윙은 단순히 멋만 내자고 달아놓은 것은 아니다. 의외로 상당히 편리하다. 열린 모습이 워낙 요란한지라 옆에 다른 차가 주차돼 있으면 뒷문을 못 여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붕 일부까지 같이 열리는 방식이라 의외로 좁은 공간에서도 잘 열린다. 약 20cm의 공간만 있으면 완전 개방이 가능하다.
일단 개방이 되면 열린 문짝이 탑승자를 가로막는 일은 없기 때문에 탑승자의 승하차가 더 쉬워진다. 천장 공간까지 열리는 덕에 뒷좌석에 어린 아이를 앉힐 경우 천장에 아이의 머리를 부딪칠 염려도 없고, 부모가 선 채로 아이의 안전벨트를 채워줄 수도 있다.
팔콘 윙은 리모컨 조작이나 차체에 달린 버튼 하나로 여닫을 수 있다. 센서 감지를 통해 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면 아예 열리질 않고, 완전 개방이 어려울 경우 가능한 만큼만 문을 여는 융통성도 발휘한다.
주차공간이 정 좁다면 리모컨으로 차를 꺼내면 된다. 짧은 거리의 전후진 정도는 원격으로 조종이 가능하다.
◆"아날로그 버튼은 가라…모든 조작은 터치스크린"
인테리어는 심플하다 못해 허전할 정도다. 버튼이라고는 아예 찾아볼 수 없고, 태블릿PC를 연상시키는 초대형 디스플레이가 센터페시아를 전부 차지하고 있다.
구동계통을 제외한 차의 모든 전장 기능은 모두 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제어된다. 내비게이션은 물론, 에어컨, 오디오 등 모든 기능을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해야 한다. 심지어 도어를 여닫거나 2열까지 4개 좌석의 시트포지션을 조절할 수도 있고, ‘엉따(온열시트)’도 이곳에서 통제한다.
디스플레이가 워낙 크다 보니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여주면서도 하단 절반 정도는 다른 기능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유용한 것은 사이드미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넓은 시야의 후방카메라를 주행 중에도 지원한다는 점이다.
조수석 동승자가 심심하다면 디스플레이의 절반은 인터넷 검색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테슬라코리아에서 5년간 무료로 LTE를 제공한다고 한다.
실내 나머지 부분은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다. 굳이 고급임을 강조하기 위한 장식적인 요소를 억지로 넣기 보다는 실내 마감재 자체를 고급으로 둘러놓았다. 천장은 섀미 느낌이 나는 부드러운 재질로 마감돼 있고, 대시보드나 도어, 암레스트 등은 가죽이나 부드러운 플라스틱 소재를 듬뿍 사용했다.
보통은 고급 차종이라도 손이 잘 닿지 않는 부분, 이를테면 도어 하단 등은 딱딱한 재질의 싸구려 마감재를 사용하지만, 모델X는 그런 곳에도 고급 마감재를 아끼지 않았다.
◆"SUV라 둔하다고? 나 테슬라야"
달리기 성능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전기차를 퍼포먼스의 영역에 끌어들인 테슬라 패밀리답게 무시무시한 힘과 속도를 뿜어낸다. 전기차는 모터에 전력이 공급됨과 동시에 최대토크를 내는 특성상 내연기관보다 출력이나 토크 대비 가속능력이 뛰어난 게 보통이지만 테슬라 모델X는 그 수준을 뛰어넘었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는 게 무서울 정도로 순식간에 속도를 끌어올린다. 서서히 속도를 끌어올린다기보다는 원하는 속도를 입력하면 즉각 그 속도에 올라서는 듯한 느낌이다. 공차중량이 2.5톤에 달하는 거대한 차체를 어쩌면 이토록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지 놀랍다.
주행가능거리에 초점을 맞춘 ‘롱레인지’ 모델이 이정도라면 가속성능에 더 많은 능력을 할애한 ‘루디클로스 퍼포먼스’ 모델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고속주행 안정성이나 회전 구간에서의 퍼포먼스도 뛰어나다. 전고가 높은 SUV지만 배터리를 차체 하부에 깔아 무게중심을 낮춘 데다, 가변식 서스펜션으로 속도가 높아지면 알아서 지상고를 낮춰 바닥에 붙어 달리니 고속도로에서만큼은 고성능 스포츠카 못지않은 능력을 보여준다.
서스펜션 높이는 센터페시아에 달린 터치스크린을 통해 총 5단계로 조절할 수 있으며, 설정을 자동으로 해 놓으면 주행 조건(주로 속도)에 따라 자동으로 높낮이를 바꾼다.
◆"뱡향지시등만 켜면 알아서 옮겨주마"
양산 판매되는 차량 중 가장 높은 단계의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된 것도 테슬라 모델X의 장점이다. 국내 법규에 맞추느라 오토파일럿 기능을 반자율주행 수준으로 한정해 놓았지만 하드웨어적으로는 완전자율주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춰놓았기 때문에 반자율주행이더라도 더 높은 안정성을 발휘한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실제 도로에서도 테슬라 모델X의 진일보된 반자율주행 기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핸들과 가속페달, 브레이크 등을 스스로 조작해 앞차와 일정 간격을 유지해 가며 차선을 따라 달리는 정도는 이미 보편화됐지만, 테슬라 모델X는 좀 더 복잡하고 좁은 도로에서도 혼자 잘 달린다.
이에 더해 차선 변경까지 지원한다. 오토파일럿으로 주행 중 방향지시등을 켜니 측후방 차량의 상태를 파악해 가며 여유 있게 해당 방향으로 차선을 옮겼다.
완충 상태에서 출발해 서울과 당진간 약 210km 구간을 왕복하고 나니 배터리 잔량은 약 40%가 남았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468km임을 감안하면 배터리 소모가 제원 대비 빠른 편이었다. 다만 무더위에 에어컨을 풀로 가동했고, 급가속이나 정체 구간에서의 주행도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 없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전기차는 충전에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게 단점이지만 테슬라의 차량은 1시간 정도면 완충이 가능한 수퍼차저가 가능하다. 다만 현재 국내에 설치된 수퍼차저 스테이션이 특급 호텔과 리조트, 쇼핑몰 등 22개 장소에 불과하다는 점은 여전히 한계다.
서울 근교 외에는 부산, 대구, 천안, 원주 등 일부 지역에서만 가능하다. 주행가능거리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편도 거리를 커버하고도 남을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지방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하려면 주요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수퍼차저 스테이션을 설치해야 할 것 같다. 충전을 위해 톨게이트를 벗어나 시내로 진입하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압도적 시야를 제공해주마…뜨거운 정수리는 덤"
전기차로서의 특성 외에도 일부 불편한 부분들이 있다. 현존하는 승용차 중 가장 크다는 전면 글라스 ‘파노라믹 윈드 쉴드’는 운전자의 머리 위까지 이어져 압도적으로 넓은 시야와 개방감을 제공해 주지만 동시에 압도적으로 많은 햇빛도 쏟아부어준다. 머리 위쪽으로 햇빛을 차단하는 솔라 틴팅으로 보완했다지만 평범한 천장을 가진 차보다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어조작 버튼이 와이퍼 조작레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것도 적응하기 전까진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덕에 와이퍼 조작레버는 핸들 왼쪽에 달려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편의사양인 통풍시트가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도 1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을 요구하는 테슬라 모델X에게 서운하게 느껴질 만한 부분이다.
몇 가지 아쉬움이 있었지만 테슬라 모델X는 존재감이 확실한 모델이다. 전기차로서는 주행가능거리 뿐 아니라 퍼포먼스에서도 자동차 마니아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만한 능력을 갖췄고, 자율주행 기능은 가장 진보적이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전기차로 덩치 큰 7인승 SUV도 경쟁력 있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전세계 자동차 업계에 증명해 보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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