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수요 위축에 돈 묶인 가계…여윳돈 1년 새 5.6조 급증
경기불황 심화로 자금 운용 보수화 가속…집값 불안 요소 여전
국내 가계가 쓰지 않고 쌓아두고 있는 여윳돈이 3개월 새 5조원 넘게 불어나며 17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고 실물 자산의 수요는 위축되면서 마땅히 자산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런 와중 국내외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자금 운용이 더 보수적인 흐름을 보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 같은 여유 자금이 다시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하는 숨은 폭탄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중 가계·비영리단체 부문의 순자금 운용 규모는 17조6000억원으로 1년 전(12조원)보다 46.7%(5조6000억원)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순자금 운용은 경제주체가 예금, 채권, 보험·연금 준비금으로 굴린 돈에서 금융기관 대출금 등을 뺀 금액이다.
이처럼 가계의 여윳돈이 확대된 원인으로는 우선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꼽힌다. 이로 인해 주택 매매가 축소되면서 자금 잉여 확대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주택 구입이 줄면서 가계의 여유 자금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위축돼 가는 소비 심리와 경기 불황에 대한 불안도 이런 추세를 부추기고 있는 요소로 꼽힌다. 대내외 경기 둔화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으로 소비 부진이 지속되고 있고, 가처분소득 개선이 미흡한 상황에서 급속한 고령화 진행과 연금 등 노후 소득 미흡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저축 수요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가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여유 자금을 쌓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드리운 경기 불황의 그림자가 올해 더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세계은행은 이번 달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2.5%로 전망, 지난해 2.4%에 비해 근소한 상승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지난해 6월에 내놨던 기존 전망치(2.7%)보다 0.2%포인트 낮아진 수치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이후 가장 미약한 성장세다.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글로벌 경제 여건과 금융 환경을 고려하면 주식시장 등 자산 가격이 상당 기간 뚜렷한 방향성을 보이기 어려워 자금 운용이 점차 보수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경기 부진과 부동산 규제 강화에 따른 관망세 등이 겹치면서 금융 시장 내 유동 자금이 은행 예금 등 안전자산을 중심으로 유입될 것이란 전망이다. 아울러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 등 저금리 고착화로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부동산·파생·대체자산 펀드와 외화자산에 대한 투자 선호가 확대될 것이란 예상이다.
이와 함께 위험자산 가격 조정과 주택시장 규제 강화로 기대수익률이 하락함에 따라 안정적 현금 흐름이 창출될 수 있는 금융상품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단기 금융 상품에 대한 수요와 중수익 상품 선호 지속, 금융사의 다양한 신탁 상품 개발 노력 등에 힘입어 신탁으로의 자금 유입이 지속될 것이란 예측이다.
이처럼 단기 금융 상품에 대한 수요와 중수익 상품 선호 현상이 지속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여유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재유입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불어난 자금이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향하며 다시 한 번 집값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관계자는 "12.16 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중 유동성 호조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여유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재유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주택시장 관련 초강력 규제에도 불구하고 경기 활력 제고를 위한 건설투자 확대 등 사회간접자본 예산 집행 확대는 부동산 시장 자금 유입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