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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파병 반대'였던 文대통령의 파병카드


입력 2020.01.22 06:00 수정 2020.01.22 06:11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진보반발' 의식한 정무적 단어선택…'파병' 아닌 '파견확대'

한미동맹·이란과의 관계 고려에 향후 남북관계 영향도 주목

문재인 대통령(자료사진) ⓒ데일리안 문재인 대통령(자료사진) ⓒ데일리안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결정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으로 이라크 파병에 반대 입장이었던 문 대통령은 이젠 국정운영의 최종책임자로서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한미동맹 훼손치 않고 이란 관계도 고려한 '절충안'


국방부는 21일 청해부대의 파견 지역을 호르무즈해협이 있는 아라비아·오만만까지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파병은 미국이 요구한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청해부대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독자적 작전을 펼치는 방식이다.


한미동맹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호르무즈 해협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이란과의 관계도 고려한 일종의 '절충안'이라는 평가다. 그동안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공동으로 방위하기 위해 군사동맹체 IMSC을 창설할 테니 동참해달라고 동맹국에 요구해왔었다.


무엇보다 '국민 안전'과 '원유 수급'이라는 여론을 설득할만한 명분도 내세웠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70% 이상이 지나는 곳으로 에너지 안보와도 직결된 지역이다. 또 중동 지역에는 약 2만5천명의 우리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번 결정을 통해 중동지역 일대 우리 국민과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는 한편, 항행의 자유 보장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미국 국방부에 우리의 입장을 설명했으며, 이에 미국은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에도 외교라인을 통해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


진보진영 반발에 '파병'을 '파병'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


특히 정부는 이번 파병을 '파견지역 확대'라는 수사로 정의했다. 이날 국방부의 발표자료에는 '파병'이라는 단어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는 17년 전 이라크 파병 당시 노무현 정부와 진보지지층이 벌인 '좌좌(左左)갈등'을 의식한 정무적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자 지지층은 거세게 반발하며 국정운영 동력을 꺼트렸다. 문 대통령도 저서 <운명>에서 "임기 첫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결정이 이라크 파병이었다"고 했을 정도다.


그때와는 모든 것이 다른 파병…'진보반발' 누그러질 듯


하지만 이번 파병 결정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 직후에 불이 꺼지지 않은 전장에 뛰어든 성격이 짙었다.


더욱이 파병된 병력도 4년10개월 간 3600여명으로 대규모였다. 반면 이번 파견 병력 규모는 청해부대 정원 320명을 넘지 않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극심한 진통을 겪은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점도 큰 차이다. 이번 파병이 청해부대의 기존 작전 지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결정됐기 때문에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상대적으로 17년 전 보다는 진보진영의 반발 목소리가 작을 수밖에 없다.


아울러 이번 결정이 미국의 요청에 부응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독자적 남북협력 추진과 관련한 워싱턴의 부정적 기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호르무즈 파병 이후 미국의 입장변화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정부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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