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게 많은 집이 불안도 많은 법
‘정치적 올바름’을 중시하는 시대정신
미국이 ‘있는 집구석’이라서 그렇다. 원래 잃을 게 많은 집이 불안도 많은 법이다. 그래서 세계 최대 부자나라 미국인들에겐 불안이 많다. 또, 미국은 소련과 대립하면서 냉전을 이어왔고, 테러집단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도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제1세계 국가들이 최근 들어 전쟁을 많이 겪지 않은 것과 달리 미국은 지속적으로 전쟁을 수행해왔다. 총기 사건도 수시로 일어난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기생충’이 유독 미국에서 더 각광받은 이유 중 하나다. ‘기생충’은 가난한 사람들의 테러에 의해 부잣집의 평화가 깨지는 이야기다. 미국인들이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는 공포와 맞닿아있다.
일부 부자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기생충’에 나오는 양옥집이 우리가 보기엔 부잣집 같지만 미국인이 보기엔 교외 주택단지의 중산층 주택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 잔디밭과 창고가 딸린 이층집이란 면에서 그렇다. 그래서 ‘기생충’은 마치 중산층의 삶이 침입자에 의해 파괴되는 것 같은 구도인데, 이게 미국 중산층의 불안을 건드린다.
아카데미상에 투표하는 아카데미 회원 정도 되면 기본적으로 미국사회의 중산층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기생충’의 설정에 더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보통 고학력 중산층이 진보적 정치의식을 가질 때가 많다. 그래서 강남좌파라는 식의 놀림을 받는다. 미국에서도 아카데미 회원들은 상당 부분 고학력 중산층일 것이고, 따라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요즘 대두되는 미국적 진보 화두에 민감하다. 그러니까 ‘기생충’ 같은 다양성 영화에 더 우호적이다. 그 와중에 중산층, 즉 ‘가진 자’로서의 불안도 가지고 있는데 ‘기생충’이 그 부분까지 건드린 것이다.
‘기생충’이 기존 사회파 영화와 다른 대목은, 가난한 사람이 악한 침입자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부자는 선량한데 이유 없이 당한다. 이것이 미국 중산층이 몰입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누구나 자기자신은 선량하다고 믿는 법이어서, 미국인들 또는 미국 중산층은 선량한 자신을 타자가 이유 없이 공격할까봐 불안해한다.
이번에 ‘1917’로 ‘기생충’과 경쟁한 샘 멘데스 감독은 데뷔작인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을 휩쓴 전력이 있다. 바로 그 ‘아메리칸 뷰티’도 미국 중산층의 불안을 그린 작품이었다. 이렇게 중산층의 평화가 파괴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미국 평단이 우호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1980년대 레이건 정권 이래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당연히 사회불안도 증대되고 있다. 그런 불안이 반영된 영화가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조커’다. ‘조커’는 빈자가 사회모순 때문에 필연적으로 악인이 되는 과정에 집중했는데 반해 ‘기생충’은 선량한 부자가 이유 없이 당하는 모습에 조금 더 집중했다. 미국 중산층 입장에선 후자에 더 몰입이 쉬울 것이다. ‘조커’에서 빈자를 악인으로 만든 건 사회이기 때문에, 결국 관객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얘기가 돼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이런 구도로 인해 ‘가진 자’로서의 불안이 내재된 미국인들 또는 미국 중산층의 호응을 ‘기생충’이 받은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 중 양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미국사회의 현실, 봉준호의 생애 업적, ‘기생충’의 완성도와 대중적 매력, 이질감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우화적 상징성, ‘정치적 올바름’을 중시하는 시대정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생충’ 태풍이 만들어졌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