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성 보험에 승부 건 삼성, 자산 팔아 버티는 한화·교보
눈앞의 실적은 지켜냈지만…제로금리 반등 시점에 '성패'
국내 빅3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을 계기로 현실화한 제로금리 위기에 맞서 서로 다른 해법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생명은 훗날 재무적 부담을 지게 되더라도 일단 저축성 보험을 대거 판매해 실적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인 반면,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그 동안 쌓아둔 자산을 팔아 보릿고개부터 넘기고 보겠다는 계산이다. 금융권에서는 금리가 다시 반등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느냐에 따라 양측의 성패가 크게 갈리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3대 생보사들이 지난해 들어 3분기까지 거둔 당기순이익은 총 1조4687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5809억원) 대비 7.1%(1122억원)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에서는 전반적으로 선방한 성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크게 침체되면서 보험 판매가 더욱 어려워지고, 특히 갑작스런 제로금리 현실화로 투자 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감안하면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안도감이다.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잘 굴려 보험금을 지급하고 남은 투자 수익으로 실적이 판가름 나는 생보사의 사업 구조 상 코로나19 이후 0%대까지 떨어진 기준금리는 경영의 최대 악재였다.
생보사별로 봐도 결과에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속사정은 비슷했다. 같은 기간 삼성생명은 8193억원에서 7598억원으로, 교보생명은 6073억원에서 4676억원으로 각각 7.3%(595억원)와 23.0%(1397억원)씩 당기순이익이 감소했다. 반면 한화생명의 당기순이익은 1543억원에서 2413억원으로 56.3%(869억원) 증가했는데, 이는 이전 실적이 워낙 좋지 않았던데 따른 기저효과의 영향이 컸다. 한화생명의 당기순이익은 아직 교보생명보다 2000억원 넘게 적은 금액으로, 실적 회복기에 놓여 있다는 해석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저마다 위기 대응 방식이 달랐다는 데 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시선이 쏠리는 곳은 국채 최대 보험사인 삼성생명이었다. 삼성생명은 저축성 보험을 키워드로 삼았다. 예전부터 저축성 상품은 보험사가 단기간에 실적을 끌어 올리려 할 때 가장 핵심적인 무기가 돼 왔다. 매달 보험료를 나눠 내는 다른 상품들과 달리 저축성 보험은 대부분 가입 시 전체 보험료를 한 번에 내는 일시납이 많아 보다 빠르게 보험료 수익을 늘려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생명이 저축성 보험에서 거둬들인 초회보험료는 조사 대상 기간 9607억원에서 1조9243억원으로 100.3%(9636억원) 증가하며 두 배 넘게 불어났다. 초회보험료는 고객이 보험에 가입한 뒤 처음 납입한 보험료로, 보험업계의 성장성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다. 한화·교보생명 역시 저축성 보험 판매에 힘을 줬지만 삼성생명과 비교하기엔 격차가 상당했다. 이들의 저축성 보험 초회보험료를 보면 한화생명이 2741억원에서 4557억원으로, 교보생명은 1886억원에서 2329억원으로 각각 66.2%(1816억원)와 23.5%(443억원)씩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처럼 저축성 보험을 선택한 삼성생명과 달리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이 꺼내든 카드는 자산 매각이었다. 이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한화생명이었다. 해당 기간 한화생명이 금융 자산을 처분해 벌어들인 이익은 2718억원에서 8014억원으로 194.9%(5296억원) 급증했다. 교보생명의 금융 자산 처분 이익 역시 4004억원에서 7340억원으로 83.3%(3336억원)나 증가했다. 삼성생명도 관련 이익이 3233억원에서 4689억원으로 45.1%(1456억원) 늘긴 했지만, 한화·교보생명과 비교하면 그 증가폭을 최소화한 모양새다.
이처럼 각 생보사들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성과를 거둔 모습이다. 문제는 각 전략이 갖고 있는 아킬레스건도 분명하다는 점이다. 먼저 삼성생명은 저축성 상품이 불러올 재무적 압박이 최대 숙제가 될 전망이다. 저축성 보험은 날이 갈수록 보험사의 위험을 키울 악재로 거론되는 상품이다. 기준금리가 0%대까지 추락할 정도로 저금리가 심화한 와중에도 영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높은 금리를 보장해야하기 때문이다.
시행이 다가오고 있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은 이런 금리 부담을 더욱 키우는 요소다. 2023년 IFRS17이 적용되면 현재 원가 기준인 보험사의 부채 평가는 시가 기준으로 바뀐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과거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경쟁적으로 판매했던 생보사들이 요즘 들어서는 이를 자제하고 있는 이유다.
아울러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대규모 자산 매각으로 잃게 된 기회비용이 걱정거리다. 금융 자산을 많이 처분했다는 것은 그 만큼 향후 투자 이익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원동력을 잃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래의 자산운용 수익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사정이 급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결국 시장 금리의 향방이 양측의 표정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란 예상이 제기된다.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 이뤄지며 기준금리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정상화할 때에는 삼성생명이 미소를 짓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저축성 보험 확대를 통해 아낄 수 있었던 자산을 곧바로 활용해 투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다만,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입장에서는 섣불리 팔아버린 자산이 더욱 아까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지금의 저금리 기조가 생각보다 길어지면 삼성생명은 이중고를 겪게 될 공산이 크다. 자산운용 수익률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누적되는 저축성 보험에 따른 재무적 부담까지 짊어져야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선제적으로 자산을 수익으로 전환한 한화·교보생명이 상대적으로 이익을 누리게 되는 형국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생각보다 길어진 코로나19 국면에 경기 회복 예상 시점이 계속 뒤로 밀려나고 있는 탓에 아직도 기준금리 반등 시점을 섣불리 예상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기준금리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언제쯤 해소되는지에 따라 최근 보험업계에서 이어지고 있는 자산 매각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