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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성명서’의 통쾌함…그리고 그 씁쓸함


입력 2021.08.08 07:16 수정 2021.08.08 03:44        데스크 (desk@dailian.co.kr)

‘우아하고 얌전한’ 보수우파 며느리들이 가한 일격

애국가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더 좋은 공격자들…….

ⓒ유튜브 화면캡처

1980년대 중반 필자가 친구와 함께 서울 신촌의 한 동시상영관에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일이다.


당시에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극장에서 애국가를 화면과 함께 틀어 주었다. 오랜만에 그 ‘전체주의’적 의례를 강요당하는 5공 치하의 극장에 왔던 탓인지 그 순간이 무척 불쾌하고 모멸스러웠다. 친구가 옆에 있어서 더욱 ‘의식 있는’ 20대 청년으로서 객기를 부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는지도 모른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있던 중간쯤에 필자가 고함을 빽 지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다른 순간도 아니고 국가(國歌)가 상영되고 있는 동안에 그런 몰상식하고도 무례한 잡음을 내다니……. 그것은 반독재 ‘의식’과는 거리가 먼, 친구 앞에서 뭔가 보여 주려고 한 치기에 불과한 도발이었다.


야당의 대선 예비후보 최재형 집안에서 새해 가족이 모일 때마다 애국가 4절을 다 부르는 국민의례를 한다고 해서 조롱과 반박이 일어나는, 대한민국 대선 사상 초유의 ‘며느리 성명서’ 발표를 보자니 옛날의 그 일이 떠올라 씁쓸함과 함께 얼굴이 화끈거린다.


3공에서 시작돼 5공 이후까지 18년간 지속한 ‘국기하강식’도 전체주의적 애국 강요 행사이긴 했다. 오후 5시(여름철엔 6시)에 갑자기 애국가가 나오면 거리에서 길을 걷던 시민들이 일제히 부동자세가 돼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나운서의 녹음, ‘우리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라는, ‘굳게’를 특히 힘주어서 길게 발음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뭉클해지는 가슴으로 경청했다.


한국의 진보좌파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미국 학교에서도 국기에 대해 맹세를 한다. Pledge of Allegiance (충성의 맹세)라는 것을 어린 초등학생들도 다 외워 매일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암송하도록 하고 있다.


“I pledge allegiance to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o the Republic for which it stands, one nation, indivisible, with liberty and justice for all. (나는 미합중국 국기와 그것이 상징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결코 나누어 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이를 위한 자유와 정의의 나라입니다.)”


애국은 이렇게 교육하고 세뇌하는 과정을 통해 실천되는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동네를 지나다 보면 집에 국기를 걸어 놓은 풍경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들의 애국심은 정말 놀랍다. 이 투철한 나라 사랑의 마음이 어떻게 교육을 거치지 않고 사람들 가슴에 새겨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놀라운 투혼을 발휘해 메달권에 들어 시상대에 올라갔을 때 그들 가슴에 달린 태극기를 보고 무한한 자긍심을 갖는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가 자랑스럽게 가슴에 손을 얹고 있을 때 감격의 눈물을 쏟기도 한다.


다른 데서도 이래야 한다. 모든 국민의 애국적 행위, 모든 태극기, 모든 애국가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어찌해서 진영이 다르면 그 애국심을 존경하는 대신 조롱을 보내는가?


최재형의 부친 고(故) 최영섭 대령은 6.26 대한해협해전의 영웅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애국 군인이 나라를 걱정하며 나라를 위해 애국가를 모두 부르자고 가족들에게 제안해서 실천한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를 존경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들이 파시즘이네 전체주의 냄새가 나네 하며 비난한 건 아마도 최 대령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나라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걱정을 많이 해서 애국가를 부르자고 했다고 소개한 기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라 걱정보다 문재인 비판이 괘씸했던, 좋게 말해서 진영 논리, 더 직접적으로 치부를 들추자면 가볍고 속 좁은 모습이다.


자기편 수장을 건드리면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대깨문들이 느닷없는 며느리 걱정을 하며 시아버지 최 대령과 그 가족들의 명예 훼손을 자행한 대 대한 이 집 며느리들의 반격, ‘며느리 성명서’는 그 분연(奮然)한 궐기와 명문장이 ‘애국 국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 것이었다.


“...저희는 나라가 잘된다면 애국가를 천번 만번이라도 부를 겁니다... 저희는 애국가를 부르는 게 부끄럽지 않습니다. 괴롭지도 않습니다. 저희 며느리들은 돌아가신 아버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기억할 겁니다. 부디 저희 아버님 명예를 더 이상 훼손하지 말아 주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필자는 ‘며느리’가 쓴 글 중에 이렇게 힘차고, 교양 있고, 애국적인 문장을 본 적이 없다. 나라가 거덜 나도 강남좌파의 진보 겉멋, 내로남불 위선에 취해 살면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는 애국 우파들 조롱과 비난에만 골몰하는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한방이었다.


최영섭 대령의 네 며느리, 즉 최재형의 아내와 형수, 제수들은 하나같이 국내 유수의 대학을 나온, 이른바 양갓집 규수 출신들이다. 규수(閨秀)란 학문과 재주가 뛰어난 여자라는 말이기도 하고 우아하고 얌전한 처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 우아함과 얌전함은 곧 보수가 그렇게 비치려고 노력하는 상징이다. 그들은 ‘우아하고 얌전한’ 보수우파 여성들을 대표해 비신사적이고 야비한 진보좌파들에게 일격을 가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호(國號)보다 ‘우리나라’, 애국가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더 선호하는 며느리 공격자들에게, 후렴구를 제외한 아름다운 대한민국 애국가 2절, 3절, 4절을 들려주겠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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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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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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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e 2021.08.08  02:26
    윤석열에 이어서 최재형이까지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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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에 2021.08.08  12:30
    태극기와 애국가를 부정하는 자들은 대한민국에서 살 이유도 권리도 없다. 
    고무보트 하나 태워 제주도 남쪽으로 떠내려 보내고 알아서 니들 세상으로 가라 빠이빠이 해 주자! 
    죄질에 따라 때려죽이는 것도 좋지만, 그 더러운 피를 묻히는 것도 역겨운 일이다. 
    개만도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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