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100개 안건 중 반대표 ‘0건’
내부통제 자율규제 주장, 실효성 ?
정은보 금감원장도 국감서 쓴소리
금융권이 ‘내부통제 자율규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올해도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상반기 5대금융지주 이사회에서는 100건에 육박하는 안건이 통과됐지만, 단 한 건의 반대 의견도 없던 것으로 나타났다. ‘DLF사태’ 같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기능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했을 경우 금융사 자체적으로 이를 통제할 수 있을지 실효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는 올해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총 32번의 이사회를 진행하며, 모두 98건의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각 지주사의 사외이사들이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0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범위를 넓히면 신한은행과 하나금융지주사에서 각각 6건, 1건의 반대 의견이 나왔다. KB국민, 우리, 농협지주에서는 모두 0건을 기록했다.
사외이사들은 높은 보수를 받는 만큼 독립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영진들을 견제 및 감시해야 하지만, 만장일치로 안건들을 모두 통과시킨 것이다. 감사위원회 위원을 제외한 5대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의 같은기간 1인당 평균 보수는 3100만~4000만원이다.
사외이사는 경영진에 속하지 않는 이사회 구성원으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고 경영진의 독단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이다. 이들은 경영진을 견제하고, 회사의 발전,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평상시에는 본업에 종사하다 분기에 1~2회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해 기업 경영활동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같은 사외이사들의 역할은 금융사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다. 사외이사들은 은행장 선출 시 구성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핵심 멤버로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연임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회사를 위한 바람막이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거수기 논란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 해마다 거론돼왔다.
물론 은행권도 내부적으로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경영, 경제, 법률, 금융권 위주에서 IT, 소비자보호 등으로 전문성을 확대하고, 여성 비율도 조금씩 늘려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최근 부각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있어 지배구조 영역에서의 이사회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은행연합회 등 5개 금융협회는 ‘금융산업 내부 통제 제도 발전 방안’을 발표하며, 내부통제를 금융사 자율로 진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건의문을 금융당국과 국회에 제출한 상태이다. 정기·수시평가를 통해 결함이 발견되면, 우선적으로 이사회가 중심이 돼 임직원 징계 조치 및 내부 통제 개선 계획을 마련하겠다는 방안이다.
금융당국은 제출안을 검토중이지만, 가계대출 문제와 국정감사 일정이 맞물리면서 별다른 진전사항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간 금융당국의 기조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사외이사 역할론을 감안하면 금융사 내부통제 자율규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역시 지난 7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금융지주 ‘이사회 거수기’ 논란에 대한 질문에 “여러가지 이사회 구성, 운영과 관련한 제도적인 변화가 있어왔지만 아직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며 “앞으로 이사회 기능과 조직에 대해 고민을 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이날 정무위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권의 내부통제 자율 강화 제안을 언급하며 “금융지주 이사회의 찬반여부를 분석한결과 거수기처럼 (모든 안건이) 통과된다”며 “이사회 선임 구조나 의사결정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