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매매업계 현대차‧기아에 대한 중고차 사업조정 신청은 편법"
"8년간 보호받고도 자정노력 안하더니…소비자 고통 무시하는 처사"
정부가 중고차 시장 개방 여부를 놓고 정치적 고려 때문에 소비자 피해를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고차 매매업계가 현대차와 기아에 대해 제기한 중고차 사업조정 신청이 ‘편법’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10일 ‘완성차업체의 중고차시장 진입 영향과 시장전망’을 주제로 자동차산업연합회(KAIA)가 개최한 ‘제22회 자동차산업발전포럼’에서 토론을 통해 “주관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2년 넘게 중고차 시장 개방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채 관련업계 눈치만 보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면서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고려에 휩쓸릴 게 아니라 독립성을 갖고 신속히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처장은 그동안 중고차 시장 개방 논의 과정에서 소비자가 배척돼 왔다는 점을 언급하며 소비자의 손실과 고통을 줄이고 권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중고차 거래규모는 신차의 2배를 넘는 데도 불구하고 각종 불법행위가 방치되고 소비자들은 홀대를 받아왔다”면서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설문조사에서 중고차 시장이 혼탁‧낙후됐다는 응답이 79%에 달했고, 68%는 국내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완성차 업계의 진출이 낙후된 시장을 투명화, 선진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응답이 56%, 국산차 소유자도 제값 받고 팔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는 응답이 47%였다는 설문 결과를 언급한 뒤 “그동안 소비자들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중고차를 사고 팔아 왔고 시장에서 배척받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대기업의 시장 진입을 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지들은 그동안 불안 속에서 중고차를 거래해 왔고 업자들에게 속아가며 사고 팔아 왔는데, 중고차 매매업계가 이를 알면서도 방치해 왔다”고 비난했다.
이런 불합리안 상황이 이어져 온 배경으로 ‘정보의 비대칭’을 꼽았다. 박 처장은 “판매자는 차량 이력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모두 갖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은폐되고 조작된 정보를 제시받아가며 거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명확한 정보 제공을 규범화하고 위반하는 업체에게는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하지만, 처벌규정은 미비하고 관리감독기관은 나 몰라라 방치해 왔다”고 꼬집었다.
중고차 매매업계가 오랜 기간 대기업 진출 제한을 통해 보호받아왔음에도 불구, 전혀 자정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 처장은 “2013년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이후 6년간 대기업 진출이 제한됐고, 2019년 생계형적합업종 신청 이후 심의가 지연된 2년까지 포함하면 총 8년간 보호받았지만, 자정 노력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놓고도 사업조정을 신청해 사업(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진출)을 중단토록 편법을 동원한 것은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에서 받아온 고통을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처사”라며 “중고차 매매업계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엄청난 비판에 직면할 것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고차 매매업계는 지난 1월 중고차 시장 진출을 위한 사전작업에 나선 현대자동차와 기아에 대해 중기부에 사업조정 신청을 제기한 바 있으며, 이에 대해 중기부는 현대차‧기아에 사업개시 일시 조정 권고를 내렸다. 박 처장은 이를 두고 ‘편법’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박 처장은 “지금도 전화와 홈페이지를 통해 소비자들로부터 ‘중고차 시장 개방 여부가 언제 결정되느냐’,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문의가 수없이 들어온다”면서 “중기부가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사기매물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처장은 2년 넘게 심의를 미루고도 또 다시 대선 이후인 3월 다시 심의하겠다는 생계형적합업종 심의위원회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심의위가 정치적 상황에 휩쓸려선 안된다. 2년 넘게 심의를 미루고도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는 핑계는 소비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루 빨리 소비자 보호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처장은 이어 “완성차, 대기업의 시장 진입으로 중고차 시장이 안정화돼 소비자 피해가 줄어드는 한편, 대기업과 기존 중고차 매매업체들이 상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중고차 적합업종 지정, 과도한 법적용 소지"…"車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도"
한편, 이날 포럼에서 권용수 건국대학교 교수는 중고차 업종의 적합업종 지정에 대한 법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생계형 적합업종과상생법상 사업조정제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사실상 동일한 효과로 동일 업종에중복 적용을 하는 것은 법적 미비에 따른 과도한 법적용 소지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제한된 지금의 상황이 소비자들의 피해를 불러올 뿐 아니라, 전문 중견‧중소기업의 성장을 억제하면서도 막상 적합업종 지정기업의 경영성과는 오히려 악화되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 통상규범과의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권 교수는 “적합업종 제도는 제도 변천 과정에서 나타난 역기능이 있고, 기술 발전과 융·복합화, 글로벌화에 상응되기 어려운 점, 적합업종 논의에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보다 약자인 소비자 배려가 빠진 점 등을 고려할 때 우리 경제의 균형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명분만으로 제도를 정당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상규 대한교통학회 박사는 중고차 업종의 대기업 진출 제한이 산업 측면에서 경쟁력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제조, 유통, 보험, 운송, 관리 등 자동차 전주기의 유기적인 서비스 향상이 마련되지 않으면 자동차 제조업체는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며 완성차 제조사의 중고차시장 진입을 허용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 박사는 중고차 매매업계 의견인 영세기업 퇴출 가속화 가능성 우려와 독과점 발생시 손해 발생 우려에 대해서도 언급한 뒤 “독과점 방지를 위한 인증중고차 다양화, 인증항목 다양화, 종사원 역량 강화, 소비자 피해보상, 종사원 교육 및 처우개선 등을 위한 공제조합 설립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