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관련 소송, 법원 “저작권 침해 인정하기 어렵다”
가요계와 구단, 선수, 팬들까지 만족할 수 있는 결과 아냐
KBO 리그 직관의 묘미는 현장감이다. 그 중에서도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행위는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메이저리그는 물론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선수마다 부여되는 응원가를 ‘떼창’하는 문화는 야구가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도록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응원가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가요의 멜로디에 선수의 이름을 넣어 개사해 부르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익숙한 멜로디는 들을 수 없게 됐다. 응원가 사용을 둔 원작자와 구단 측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다.
펑크 록 밴드 타카피(T.A-Copy)의 곡 중엔 평소 야구광인 보컬 김재국 영향으로 야구와 관련된 곡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정규 5집 ‘케세라세라’의 동명의 수록곡은 박석민(NC다이노스) 선수의 응원가로 쓰이고 있고, 이에 앞서 모상기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일 당시 같은 앨범의 수록곡인 ‘나는 뜨겁다’를 응원가로 사용하기도 했다. 심우준(KT위즈)선수는 ‘프로포르 대작전’ OST인 타카피의 곡 ‘오! 나의 여신님’을 응원곡으로 사용했다.
김재국은 최근 “원곡의 가사를 수정해 사용할 경우 저작자에게 주어지는 저작인격권이라는 게 있는데 구단에서 그 권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팬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저작권자의 권한으로 박석민, 심우준 선수 응원가로 쓰고 있는 노래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저작인격권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초 20여명의 작사, 작곡가들은 “원곡을 원작자 동의 없이 마음대로 바꿔 수년째 응원가로 사용했다. 이는 동일성유지권과 2차적저작물을 침해”라며 삼성 라이온즈에 4억2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법원은 저작인격권 침해가 아니라며 삼성 구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곡을 편곡, 개사한 응원가가 대중적으로 알려져서 원곡과 헷갈릴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대중가요의 특성상 저작자로서는 어느 정도 변경 내지 수정을 예상하거나 감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동일성유지권과 2차적저작물 침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항소 절차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10월 2심 판결이 나왔다.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으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동일했다. 다만 원작자의 성명을 표시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성명표시권 침해에 대해서만 원고의 손을 들어줬고, 이에 대한 손해액을 사용단위 당 50만원으로 계산, 작곡가 15명에게 50~2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가요 관계자들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작곡가들의 승소 판결이 나왔지만, 사실상 패소한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기존 4억2000만원 청구 소송이었는데, 최대 금액을 배상했다고 하더라도 15명에게 200만원씩, 총 3000만원 수준”이라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법원의 판결에 따라 반강제적인 합의가 이뤄진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작권은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지만, 사실상 저작인격권은 법적으로 전혀 보호가 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저작인격권에는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이라는 세 개념이 포함돼 있다. 프로야구 응원가는 그중 동일성유지권의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다. 동일성유지권은 저작물의 내용·형식과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다. 저작물이 제3자에 의한 무단 변경·삭제로 손상되지 않도록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저작권자에게 보장돼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응원가의 경우 원곡을 편곡하고 개사하는 과정에서 원작자의 창작 의도와 무관하게 전혀 다른 형태로 곡을 바꿔놓기 쉬우므로, 저작물의 동일성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작권자가 슬픈 감성으로 지은 노래가 흥겨운 템포의 응원가로 바뀌는 과정에서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 침해 소지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저작인격권은 KBO로부터 저작권료를 받던 음악저작권협회, 한국음악실연자협회, 한국음악제작자협회와 무관하게 오로지 원곡자와의 협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이에 KBO가 아닌 각 구단들이 직접 원곡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저작인격권과 관련한 협의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한 구단 측 관계자는 “원곡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손발이 모자랐다. 뿐만 아니라 작곡가마다 부르는 액수가 천차만별이고, 터무니없는 액수를 요구하는 원작자들도 있다 보니 ‘부르는 게 가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7시즌에는 경기장에서 응원가를 아예 들을 수 없거나, 가사를 제외한 멜로디만 나오는 일이 빈번했고, 최근에는 구단이 자체적으로 응원가를 공모 형식으로 받아 제작하는 추세다. 법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운 응원가를 선택하면서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재판부의 판결에 따라 선수들의 응원가는 저작권료만 지불하면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 또한 2차적저작물, 동일성유지권 등에 대해서는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해 구단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비용도 사실상 발생하지 않았다. KBO 관계자는 “저작권료는 정상적으로 지급 중이다. 저작인격권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삼성의 재판 결과를 각 구단들에 통보했고 따로 지침은 내리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수도권의 한 구단 측 관계자 역시 “재판부 결과를 토대로 저작인격권과 관련한 지불은 하지 않게 됐다. 응원가 비용은 저작권료만 낸다”라며 “일부 원곡자들이 사용을 원치 않는 곡들은 따로 응원가를 만들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구단은 “저작권료만 해도 비용이 상당하다. 그래서 아예 구단 차원에서 자체 제작을 했다. 팬들 입장에서는 아직 어색하겠지만 그래도 공을 많이 들였다. 저작권이 소멸된 클래식이나 옛날 노래도 많이 참조한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런 자체 제작 추세가 가요계와 구단, 선수 그리고 팬들까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는 아니다. 가요계에서도 일부 가수들은 자신의 곡이 선수의 응원가로 사용하는 것을 바라고, 구단과 선수 그리고 팬들도 익숙한 기존의 멜로디를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편리하고 실용적이다. 한 때 한 구단은 기존 응원가 중 대부분을 교체하면서 빠르게 위험 부담 최소화에 나섰다가 팬들의 거부 운동이라는 ‘역풍’을 맞기도 했고, 새 응원가를 공개한 직후 구단으로 항의 전화가 쏟아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윤동환 부회장은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윤 부회장은 “음악 관계자가 아닌 이상 음악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동의를 받고, 서류화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먼 미래를 봤을 때 기존 음악들이 사용되는 것에 분명 긍정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응원가 사용 허락을 받는 절차를 간소화시키는 것이 그 방법이다. 애초에 저작권협회에 곡을 등록할 때 자신의 곡이 스포츠 응원가, 선거운동 음원으로 사용 가능한지 여부만 입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서로에게 좋은 기회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