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그룹·에이치디현대(현대중공업) 등 바이오기업 지분 투자하거나 인수
롯데, 바이오의약품 CMO(위탁생산) 사업 직접 진출 계획
국내 대기업들이 바이오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현대자동차와 포스코를 제외한 8개 그룹이 바이오 사업에 진출하거나 지분 투자에 나서는 모양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바이오와 헬스케어를 회사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롯데 측은 주총에서 바이오 및 헬스케어 관련 사업을 롯데지주가 직접 투자하고 육성할 계획을 발표했다. ESG경영혁신실 신성장2팀과 신성장3팀이 각각 바이오와 헬스케어 사업을 책임지고 주도하게 된다.
롯데지주는 오는 6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바이오산업 행사인 '바이오 USA'에 롯데바이오로직스란 업체명으로 참석 등록을 해둔 상태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업종은 CMO(위탁생산)로 기재됐다. 본격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출신의 이원직 상무도 영입했다.
롯데 측은 미국의 CMO 공장을 인수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전문 연구인력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신약 연구개발(R&D) 대신 CMO 분야를 선택, 빠르게 산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CMO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방면으로 바이오 사업을 검토 중"이라며 "인수도 검토 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GS그룹은 국내 보툴리눔 톡신 1위 기업인 휴젤을 인수하는데 참여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휴젤은 지난달 열린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최대주주가 기존 LIDAC에서 아프로디테 애퀴지션 홀딩스로 변경됐다. 아프로디테는 GS그룹과 싱가포르계 C-브리지캐피털(CBC),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국부펀드 무바달라, 사모펀드(PEF) IMM인베스트먼트 등 4개사가 구성한 다국적 컨소시엄이다. GS그룹 오너 4세인 허서홍 GS 부사장과 이태형 GS 전무(CFO) 등은 휴젤의 기타 비상무이사로 이사진에 합류했다.
에이치디(HD)현대(현대중공업지주)도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를 점찍었다. 지난해 말 '암크(AMC)바이오'를 설립한 데 이어 헬스케어 업체 '메디플러스솔루션'을 인수했다.
신세계그룹 계열 이마트는 마이크바이옴 신약을 만드는 바이오벤처 고바이오랩에 지분 투자를 했다. 앞으로 고바이오랩과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고바이오랩은 국내 최초로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으로 미국 임상 2상에 진입한 회사다. 장내 미생물과 이들 미생물이 분비하는 물질을 이용해 염증성 장질환, 건선, 아토피 피부염 등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매각하며 바이오 사업에 손을 뗀 CJ그룹은 5년 만에 바이오·제약 분야에 다시 진출한다. CJ는 최근 장내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면역항암제와 염증성 장질환치료제 등을 개발하는 천랩(현 CJ바이오사이언스)을 인수했다.
LG화학은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 후보물질 'LG203003'의 임상 1상을 승인받았다. 앞서 LG화학은 2019년 미국 보스턴에 법인을 세우고 현지에서 임상을 추진해왔다. 현재 5개 후보물질이 미국에서 임상을 진행 중이거나 진행할 예정이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바이오 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는 것은 삼성과 SK의 성공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설립 11년차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CMO 캐파 세계 1위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 1조5680억원, 영업이익 5373억원의 실적을 냈다. 회사는 최근 삼성바이오에피스를 100% 자회사로 공식 편입한 만큼 에피스의 바이오의약품 R&D 역량을 내재화해 장기적으로는 신약 개발까지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SK는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각각 신약과 백신을 개발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SK바이오팜이 자체 개발한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는 진입문턱이 높은 미국과 유럽 시장에 진출했다. 세노바메이트는 지난해 미국에서 전년보다 6배 급증한 782억원 매출을 올렸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 등 코로나 백신 위탁생산으로 지난해 92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자체 개발 코로나 백신인 '스카이코비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SK가 바이오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금방 포기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 성과를 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이제 막 진출하는 대기업들이 당장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꾸준한 투자와 시장 진입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