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출자 구조 뜯어 고쳐야
삼성물산 지주사 전환 및 삼성전자 인적분할 가능성 등 제기
지배구조 개편 과정서 이사회 전문성 및 독립성 강화 전망도
'이재용 회장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금산분리 위배 지적을 받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주식 문제를 해결하면서 외국 자본 침투 영향을 받지 않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는 이재용 삼성 회장이 2020년 5월 4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후 지배구조 문제를 검토해왔다.
지난해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이 회장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으며 재편 작업이 미뤄졌으나, 이재용 회장이 올해 8·15 특별사면을 통해 사법족쇄가 풀리고 지난달엔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지배구조 개편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지배구조 개편 논의를 위해 삼성은 지난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발주한 연구 용역 보고서를 올 상반기 받아본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에서 관련 내용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는 일명 '삼성생명법'이라고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꼽힌다.
현재 삼성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31%를 보유하고 삼성물산을 통해 다른계열사를 지배하는 '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구조로 이뤄져있다. 핵심 기업인 삼성전자를 직접 지배하지 않고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간접 지배하는 형태다.
해당 개정안은 지배구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삼성생명을 정조준한다. 현행법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채권·주식을 총 자산의 3%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3%를 따지는 기준을 '취득 원가'에서 '시가'로 평가하도록 해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상당 부분을 팔아야만 한다.
삼성전자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현재 8.51%(5억815만7148주)로 7일 기준 삼성전자 주가가 6만원임을 감안하면 약 30조4900억원 규모다. 삼성생명 자산총계는 약 315조원으로 여기서 3%(9조5000억원)를 제외한 약 21조원 어치를 팔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회장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아지게 되는 만큼 지배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만 개정안에 해당되는 기업이 삼성생명 뿐이어서, 갑론을박이 여전한데다 발의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통과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업계는 진단한다.
혹여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유예 기간을 최장 7년까지 두고 있어 급박한 사안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특히 삼성전자 주주 수가 최근 600만명을 넘긴 상황에서 삼성전자 주식 매각을 강행할 경우, 반발 여지가 높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서 재계는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제기한다. 삼성물산을 둘로 쪼개 삼성전자 등으로 구성된 사업지주와 삼성생명 등을 거느리는 금융지주로 분할하는 방안이다.
총수 일가는 보유한 각사 지분을 현물 출자한 뒤 이들 지주사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렇게 되면 '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전자, 삼성생명'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는 금산분리 요건에도 충족된다.
다만 이 시나리오는 곧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전환을 의미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 8.51%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전환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30%까지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수십 조원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실현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로 재계는 판단한다.
다른 방안으로는 삼성전자 분할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이 거론된다. 유안타증권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 점검'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 투자회사와 사업회사 인적분할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인적분할 후 삼성전자 투자회사는 삼성생명·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 10.22%를 인수하고, 삼성물산은 삼성 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투자회사 지분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분할 이후엔 현물출자를 통해 삼성물산-삼성전자 투자회사-삼성전자 사업회사 구조로 재편되며 삼성물산은 지주회사, 삼성전자 투자회사는 중간지주회사, 삼성전자 사업회사는 삼성물산의 손자회사로 정리된다.
유안타증권은 "해당 시나리오를 선택할 경우 삼성전자는 자사주 매입 등의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장기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경영참여 방식에도 변화를 줄지도 관심이다.
이재용 회장이 4세 승계는 없다고 못박은 만큼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를 염두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사회 중심 경영 구조를 마련하고, 이사회에서 선출된 최고경영자를 감독하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 회장 시대가 이제 막 시작된 상황에서 '이재용 이후'를 겨냥한 밑그림은 일정 기간이 흐른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출자 구조 개편이 이뤄진 뒤에라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 재편은 일부 삼성 계열사에만 해당하는 지분 정리가 아니라 그룹 전반을 살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방향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이사회 기능 확대 및 투명성 강화를 비롯해 이 같은 경영 구조를 안착시키기 위한 장치 마련 등이 심도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