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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예람 중사 아버지가 기자에게 전화한 까닭 [기자수첩-사회]


입력 2023.02.18 07:02 수정 2023.02.22 11:15        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위력 행사' 전익수 측, "예람이 살려내" 유족 절규 문제 삼아

故 이예람 유족, 재판 과정에선 아무런 소란도 일으키지 않아

변호인 항의, 조서에 기록돼…또 억울한 일 발생하진 않을까

"조치 취하겠다"는 재판부, 숙고한 뒤 다음 공판서 응답해야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 1주기 전날인 지난 2022년 5월 20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추모의 날에서 신옥철 공군참모차장이 고인의 영정을 향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님 안녕하세요. 공군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입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지난 3일 기자의 이메일로 이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 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후 전화통화에서 그는 "지난달 16일 열렸던 이 중사 관련 공판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했다"고 밝혔다. 이 말을 들으니 기자는 비록 한 달이 지난 재판이었지만 당시 상황이 또렷이 기억났다.


"무슨 일이실까요. 선생님"이라며 말을 건네자, 이 씨는 "기자님께서 그날 공판을 보셨을 때, 재판부가 전 실장의 편을 들어준 것으로 보이시나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서야 그가 내게 전화를 건 이유가 짐작됐다. 기자가 그날 재판의 분위기상 재판부가 전익수 실장 편을 들어준 것 같다고 쓴 대목에 마음이 상하셔서 전화를 거신 것이었다. 한참의 해명이 이어진 뒤 이 중사의 아버지는 "예람이 재판에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며 힘없이 통화를 끊었다.


지난달 16일 재판은 이 중사 사망 사건을 수사한 군 검사에게 부당한 위력을 행사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익수 공군법무실장에 대한 공판이었다. 당시 이 씨는 입정하려는 전 실장을 향해 "예람이가 너 때문에 죽었어. 예람이 살려내"라며 절규하듯 말했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한 서린 말에 법정은 이내 곧 숙연해졌다.


하지만 전 실장 측은 공판 과정에서 이를 문제 삼았다. 전 실장 측 변호인은 "전 실장이 법정에 도착했는데,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가) 전 실장을 향해 큰 소리를 내고 욕설을 하고 출입구를 가로막았다. 이는 재판 공정성을 훼손하고, 피고인을 위축시키는 행위다"며 "다음 기일에 똑같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재판장이 재발되지 않도록 엄중히 말해달라"고 당당히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변호인들 우려에 대해 잘 들었다. 추후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재판부 입장에서는 공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이같은 말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해는 된다. 판사님 입장에서는 검찰 측과 피고인 측 의견을 고루 수렴하는 것이 의무이자 책무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이 중사 측 유족은 재판과정에서는 아무런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또 전 실장 측에서 이 중사의 아버지의 절규를 '위축 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했지만, 이 역시도 사실이 아니다. 재판 시작 전 등장한 전 실장을 향해 한두 마디를 건넨 것뿐이고, 이마저도 경위들이 중재하자 울분을 삭였다.


공판 과정에서 전 실장 측 변호인이 재판부에 이같은 요청을 하게 되면 조서에 기록이 된다.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시작된 재판에서 이러한 주장이 기록됨으로써 또 다른 억울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우리네 속담에 단장지애(斷腸之哀)라는 말이 있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이라는 뜻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이 중사의 아버지 이 씨는 30cm 장을 끊어내는 수술을 한 뒤 이날 재판에 참석했다. 먼저 하늘로 간 자녀를 잃은 부모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누구도 알 수 없다.


재판이라는 과정은 인간사(人間事)에서 발생하는 일들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날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전후 맥락을 고려하는 것 역시 재판부의 덕목일 것이다.


전 실장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은 3월 13일 열릴 예정이다. "추후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재판부의 저의가 무엇인지 다음 공판에서 숙고 끝에 답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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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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