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조 증가폭 모두 상쇄
수요·가격 동반 부진에 악영향
국내 5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규모가 올해 들어서만 3조5000억원 넘게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 해 동안 2조원 가량이었던 연간 증가량을 두 달 만에 모두 까먹은 것도 모자라 1조원 이상의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부동산 시장 한파 속 전세 수요와 가격이 동시에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은행에까지 악영향이 번지는 모습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달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총 128조5152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6%(3조4695억원) 줄었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의 전세대출이 31조61억원으로 2.1% 감소했다. 신한은행 역시 29조4099억원으로, 우리은행은 24조7298억원으로 각각 1.5%와 4.5%씩 해당 금액이 줄었다. 하나은행도 22조5390억원으로, 농협은행은 20조8304억원으로 각각 4.2%와 1.0%씩 전세대출이 감소했다.
이로써 이들 은행의 전세대출은 다섯 달째 축소 흐름을 이어가게 됐다. 5대 은행의 전세대출 보유량은 지난해 10월 1351억원 줄며 감소로 돌아선 이후 ▲같은 해 11월 9978억원 ▲12월 1조799억원 ▲올해 1월 1조5665억원 ▲2월 1조9030억원으로 감소폭이 계속 커지고 있다.
반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은행의 전세대출은 전반적인 증가세였다. 지난해 말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총 131조9847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8%(2조2878억원) 늘었다. 2월부터 9월까지 매달 증가를 나타냈다.
은행들의 이런 전세대출 위축의 배경에는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의 여건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집값 하락과 고금리, 입주 폭탄 등이 맞물리면서 전셋값이 떨어지고 거래마저 뚝 끊긴 탓에 관련 대출 수요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모양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년 만에 6억원 대가 무너졌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5억9297만원으로, 2021년 2월(5억9828만원) 이후 2년 만에 5억원대로 주저앉았다.
특히 서울의 아파트 전세는 고금리 부담에 역전세와 전세사기 우려까지 맞물리면서 수요가 크게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대규모 입주까지 겹치면서 전셋값 하락 압력이 커졌다. 입주 물량이 몰린 동작구, 강남구 등을 중심으로 전셋값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아파트의 매매 대비 전세가 비율인 전세가율은 50% 붕괴가 임박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달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1.2%로 지난해 11월(53.9%) 이후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이로 인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석 달 만에 4만 건대까지 떨어졌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2월 27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4만9821건으로 지난해 11월 8일 이후 약 3개월 만에 5만건을 밑돌았다.
은행권은 향후 전세 추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기존 대출을 상환하고 전세의 월세 전환이 이뤄진 영향이 크다는 판단이지만, 이제 전셋값과 수요가 모두 바닥을 찍고 반등하면서 관련 대출이 다시 반등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셋값이 크게 하락한 가운데 봄 이사철을 앞두고 이주 수요가 확대되면서 수도권 중심으로 신축이나 학군, 출퇴근 편의성이 좋은 단지 위주로 전세 수요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