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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파나마운하 둘러싸고 난타전


입력 2025.03.23 07:07 수정 2025.03.23 07:07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미국 압박’에 CK허치슨, 파나마운하 운영권 美기업에 매각

習, 운영권 매각에 美와의 협상카드 활용 구상 무산에 격노

홍콩매체 동원해 CK허치슨 “배신자”로 규정하고 연일 맹폭

中당국, CK허치슨에 보안법 및 반독점위반 여부 조사 지시

마코 루비오(오른쪽 세번째)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월 2일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의 파나마운하를 방문해 미라플로레스 갑문을 둘러보고 있다. ⓒ AP/뉴시스

파나마 운하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다툼이 격화하고 있다. 파나마운하의 항구 운영권을 보유한 홍콩 기업 CK허치슨홀딩스(長江和記實業公司)가 미국의 간단없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항구 운영권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기로 결정하자 중국이 CK허치슨을 겨냥해 연일 맹폭하며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달 초 CK허치슨이 파나마운하의 양쪽 입구에 있는 2개 항구(태평양쪽 발보아항과 대서양쪽 크리스토발항) 운영권 등을 미국계 자산운용사 블랙록 컨소시엄에 매각키로 한 데 대해 격노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8일 보도했다.


시 주석이 격노한 까닭은 CK허치슨이 매각 전에 미리 베이징 정부의 승인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WP는 설명했다. 중국 지도부는 당초 파나마운하 항구 운영권 문제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협상카드로 이용하려고 구상하고 있었으나 CK허치슨의 매각 추진 발표로 이 구상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격분한 중국은 CK허치슨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CK허치슨의 거래 과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당국이 고위 지도부의 지시로 국가보안법이나 반독점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공산당중앙 대외협력기관인 대외연락부 마후이(馬輝) 부부장(차관)이 이끄는 중국 대표단은 14~15일 파나마를 방문해 주요 정당 지도자들과 만나도록 조치했다.


특히 홍콩의 친(親)중국계 일간지 대공보(大公報)는 CK허치슨을 향해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15일 '위대한 기업가는 모두 쟁쟁한 애국자'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운하 항구 운영권 매각과 관련, “왜 이렇게 중요한 많은 항구를 악의를 가진 미국 세력에 쉽게 양도했는가”라고 비판했다.


파나마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왼쪽 세번째)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12월 부인 펑리위안(오른쪽 두번째) 여사와 함께 파나마운하를 방문해 운하를 통과하는 중국 상선 선장과 무전기로 통화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이어 "'돈뿐만 아니라 목숨도 요구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들과 춤추기를 택해 역행한다면 일시적으로는 '큰 거래'에 성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미래가 없으며 역사에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공보는 중국 국무원 홍콩주재 연락판공실(聯絡辦公室)이 통제하는 매체인 만큼 사실상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틀 전인 13일 논평에서도 CK허치슨의 결정이 “전체 중국인을 배신하고 팔아넘긴 것”이라며 “미국이 협박과 압박, 회유 등 비열한 수단을 통해 다른 나라의 정당한 권익을 착복한 패권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항구에 입항하는 중국 관련 선박에 특별 수수료를 부과하는 행정명령 초안을 마련한 것을 지적하며 "미국의 계산이 뜻대로 된다면 중국의 조선과 해운, 대외무역, 나아가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육·해상 실크로드)에도 충격을 줄 것이다. 관련 기업은 어떤 입장에 서고 어느 편에 설지 잘 생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CK허치슨은 홍콩 재벌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CK)그룹 창업자이자 선임 고문의 주력 회사다. 이달 4일 파나마운하 항구 운영사 지분 90%를 포함해 중국·홍콩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 23개국 43개 항만사업 부문 지분 등 자산을 블랙록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했다. 물론 발보아항과 크리스토발항을 운영하는 ‘파나마포트컴퍼니’(PPC) 지분 90%를 넘긴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거래 규모는 228억 달러(약 33조 2300억원)에 달한다.


청쿵그룹이 파나마운하에서 운영하는 두 항구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전부터 논란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항구 운영권을 청쿵그룹이 보유한 점을 들어 “중국이 운하를 운영하고 있다”며 공세를 펼쳤다. 파나마운하 운영권 회수를 위해 군사력 동원도 불사하겠다고 파나마 정부를 압박했다.


2023년 4월19일 파나마운하로 진입하고 있는 벌크선. ⓒ 로이터/연합뉴스

1월20일 취임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운하 문제 해결에 나섰다. 2월2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파나마에 보내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과 만나 회담하도록 지시했다. 루비오 장관은 “운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파나마 정부를 을러댔다.


미국의 위세에 눌린 파나마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급기야 중국과 체결한 ‘일대일로’ 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청쿵그룹과 맺은 항구 운영권 계약도 파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의 압박에 백기 투항한 셈이다.


프랭크 식스트 CK허치슨 재무담당 이사는 “이번 거래는 순전히 상업적인 것으로 최근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정치 뉴스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항변했다. 신속하고 조용히 경쟁 입찰이 이뤄졌고 최적의 조건을 써낸 블랙록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블랙록 컨소시엄에는 블랙록 외에 미국의 인프라 분야 사모펀드 글로벌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GIP), 세계 1위 컨테이너 선사인 스위스 MSC의 항만 운영 자회사 터미널인베스트먼트(TIL) 등이 참여했다. 계약이 마무리되면 블랙록 컨소시엄은 미주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걸쳐 23개국 43개 항만에 대한 지분 80%와 파나마 포트 컴퍼니의 지분 90%를 인수한다. 청쿵그룹은 190억 달러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된다.


ⓒ 자료: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파나마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교통 요충지다. 미국 입장에서는 경제·군사적으로 퍽 긴요한 곳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유사시 대서양 쪽 미 해군이 이곳을 통해 아·태지역으로 나가고,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오는 물동량의 58%가 이곳을 거친다. 이런 곳을 중국이 사실상 통제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게 사태의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은 파나마운하에 일찌감치 주목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최단거리로 연결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03년 파나마가 콜롬비아에서 독립하도록 지원하는 대가로 프랑스에서 착공했던 운하에 대해 모든 권리를 갖는 ‘헤이-뷔노 바리야 조약’을 맺었다. 1904~1914년 미국의 주도하에 운하가 건설됐고, 이 과정에서 작업 안전사고와 말라리아 창궐 등으로 노동자들이 2만 7500여명이나 희생됐다.


1977년 지미 카터 미 행정부가 파나마와 맺은 운영권 양도조약에 따라 1999년 12월31일 파나마가 운하의 완전한 통제권을 돌려받았다. 현재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전체 화물의 70%가 미국 동부와 아시아·중남미 등을 오가는 물량이다. 미국에는 파나마운하가 핵심 무역로이고 파나마 입장에서는 미국이 최대 고객이다.


전통적 친미국가였던 파나마는 2010년 중국의 거절로 무산됐지만 외교장관으로서 중국과의 수교 협상을 담당했던 후안 카를로스 바렐라 대통령이 재임 때부터 중국과 관계가 부쩍 가까워졌다. 107년 수교국인 대만을 걷어차버리고 2017년 중국과 수교했으며 이듬해에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를 선언했다. 이에 화답하며 시 주석이 파나마를 직접 방문하면서 두나라 관계는 돈독해졌다.


ⓒ 자료: 파나마운하청(ACP)

중국은 이후 8년간 광업·통신·건설 등에 걸쳐 40여개 국유기업이 파나마에 진출했고 50억 달러 이상을 파나마에 투자했다. 40억 달러가 들어가는 파나마시티~다비드 고속철도(450㎞)를 비롯해 10억 달러 규모의 가스화력 발전소 신축, 14억달러가 투입되는 운하 제4 대교 건설, 아마도르반도 유람선 터미널과 중국 대사관 건립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트럼프의 막가파식 강공에 파나마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중국의 반대가 노골화하면서 리 선임 고문과 중국 정부와의 관계가 재조명되고 있다. 리 선임 고문은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년 간 중국 본토 부동산 자산 상당 부분을 매각하고, 그룹을 CK허치슨과 CK에셋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중국 내 민족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2019년 홍콩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을 때는 시위대에 "빠져나갈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며 관용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기도 해 중국 지도부의 ‘역린’을 건드렸다. 시 주석과 씁쓸한 기억도 남아있다.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 당서기로 재직하던 1990년대 시 주석이 이곳에 고층 건물을 지으려던 리 선임 고문의 프로젝트를 중단시킨 적이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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