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 김우진 역으로
"박정민, 작품 해석력, 표현력이 놀라운 배우"
국내 배우 최초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는 관객에게 친근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전달하는 배우다. 코미디, 드라마, 스릴러, 범죄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연기력은 한국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꾸밈없는 진정성과 깊이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그런 송강호가 이번에는 1승에서 승리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독, 승리에 무관심한 구단주, 그리고 승리의 방법조차 모르는 선수들로 구성된 프로 여자배구단이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도전하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송강호가 연기한 김우진은 고등학교 때 뛰어난 실력으로 팀의 반란을 만든 미래가 유망한 배구 선수였지만, 감독이 떠나가고 길을 잃으며 현재는 어린이 배구 학원을 운영하는 인물이다. 가정도 경제도 평탄하지 못하다. 여러모로 세상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김우진은 만년 꼴찌팀 핑크스톰의 감독이 되면서 함께 성장한다.
송강호는 '거미집', '삼식이 삼촌', '1승'으로 신연식 감독과 세 번째 인연을 맺었다. 가장 먼저 촬영한 건 '1승'이었지만 팬데믹과 여러 가지 공개 여건 상, '1승'이 가장 늦게 관객과 만나게 됐다. 블록버스터보다 새로운 시선들이 볼 때 쾌감을 느낀다는 송강호는 신연식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1승'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신연식 감독이 각본으로 참여한 '동주'라는 영화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의 삶, 귀한 발자취가 크게 보면 민족의 아픔. 작게 보면 예술가들의 고난을 통해 그분이 어떻게 살아오고 어떤 아픔 시대를 거쳐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어요. 그런데 때 마침 '삼식이 삼촌', '1승' 연출과 '거미집' 각본으로 인인을 맺게 됐죠. 신연식 감독은 생각보다 심심한 사람이에요. 보통 감독이라고 하면 나서서 지휘할 것 같은데 이 분은 차분한 선비 같죠. 저보다 9살 어리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은 놀라워요. 선배 같을 때도 있어요."
영화는 김우진의 전사를 크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왜 이혼하게 됐는지, 배구 선수를 하면서 어느 정고 절망을 겪었는지 보다는, 현재 김우진과 선수들의 관계에 조금 더 집중한다. 송강호 역시 김우진과 선수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풀어나가는 방식에 동의했다.
"김우진이라는 캐릭터는 열정이 가득한 한때는 촉망받는 선수였잖아요. 배구 인생이 잘 안 풀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혼까지 한 인물이죠. 사실 저는 김우진이 왜 이혼했는지는 궁금하지 않더라고요. 그가 똑같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선수들을 만나면서 동질감을 느끼며 한 팀이 되잖아요. 김우진에게 선수들은 거울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자기 자신을 질책하고 곧 자기 자신을 안아주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핑크스톰의 구단주 강정원 역의 박정민은 평소 송강호를 롤모델로 꼽아왔다. 송강호도 충무로의 미래로 일찌감치 박정민의 연기와 행보를 유심히 지켜봐 왔다.
"'파수꾼' 때 연기를 처음 보고 연기를 너무 잘해 놀랐어요. 옆에서 지켜보니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더라고요. 자기의 소양을 하나씩 쌓아가는데, 누구에게 배우는 게 아닌, 스스로 만들어 나가더라고요. 그렇니까 항상 입체적이고 탁월한 해석력이 나오겠죠. 그런 점에서 놀라운 배우라고 느껴요."
송강호가 생각하는 '1승'의 관전 포인트는 '루저'들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오는 희열과 위로, 그리고 스포츠 영화로서 구현한 촬영 기술이다.
"승부를 떠나 과정 속에 얻어지는 열기, 여러 영화들에서 느낄 수 없는 희열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종합예술매체잖아요. 연기 외에도 미술, 음악, 카메라 워킹의 현란함 등이 합쳐져서 줄 수 있는 감동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팝콘 먹으면서 편하게 웃으면서, 재미있는 만화를 보듯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거창하고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관객들에게 작은 행복을 주고, 자신감 회복을 준다면 이것만으로도 '1승'이라고 생각해요."
1990년 연극 '최선생'으로 데뷔한 송강호는 '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 '기생충'으로 4편의 '1000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브로커'로 국내 최초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최고의 자리에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작품을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선택해 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배우로서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면서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을 하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심장이 고동치는 작품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