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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 사라진 기업 새해맞이…시작부터 '암울'


입력 2025.01.02 14:59 수정 2025.01.02 14:59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대외 불확실성 커지며 경영환경 악화

탄핵정국‧무한참사 등 국내 악재까지

톤다운 된 신년사, 활기 사라진 신년회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사옥에 조기가 게양돼 있다. ⓒ연합뉴스


활기와 희망으로 가득해야 할 기업들의 새해맞이가 지난 연말부터 이어진 탄핵정국과 제주항공 무한공항 참사 등 악재로 전례 없이 침울한 모습이다. 국가애도기간이 4일까지 이어지면서 신년회는 예년과 달리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신년사에도 부정적 경영환경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담겼다.


2일까지 발표된 각 기업들의 신년사를 살펴보면, 대내외적 경영환경 악재가 산적해 있으며, 전 임직원이 합심해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자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무한공항 참사에 대도를 표하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이날 신년사를 발표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예측이 불가능한 도전과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진정한 위기는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 외면하면서 침묵하는 태도가 가장 큰 위기의 경고음”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그룹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업들을 키워가고 있지만 일부 사업은 여전히 목표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의 메시지도 던졌다. 그러면서 “이러한 시기일수록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신속한 실행과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도 이날 신년사를 내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는 강대국 간 패권 경쟁에 따른 교역 위축과 국내외 수요 산업 부진으로 오늘의 생존과 내일의 성장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며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관세 전쟁 격화, 중국발 공급과잉, 국내에서의 정책 변동성 증대 등 회사를 둘러싼 각종 대외 악재들을 언급했다.


그는 “철강과 이차전지소재, E&C를 비롯한 그룹의 주력 사업들이 생존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경쟁사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조건인 만큼 당면한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각 기업들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신년사를 발표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지정학적 변수가 커지고 AI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이 격변하는 경영환경을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경험했다”면서 “지금 우리에게는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지난이행(知難而行)’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신년사 말미에 “지난해 연말 무안공항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무안공항 참사에 대한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같은 날 신년사를 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새해에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한층 커져 작년보다 힘든 한 해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높다”면서 “예측불가(Unpredictable)하고 불안정(Unstable), 불확실(Uncertain)한 ‘3U’ 상태의 경영환경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우선은 안정을 기조로, 기회가 오면 기민하게 대응한다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자”고 당부했다.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신년사를 낸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회사가 직면한 사업환경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자국 산업 보호라는 거대한 울타리를 쌓아 올리고 있으며, 이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조선사업은 중국 조선소들이 원가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실적 부진으로 임원 감축과 조직 축소 등 구조조정을 겪은 석유화학, 정유, 건설기계 부문에 대해서는 “올해도 어려운 환경이 예상되지만, 지난해에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하고, 전 임직원이 사업계획을 적극 실천해 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권 회장은 신년사에 앞서 지난 주말 불의의 여객기 사고로 희생당한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예년보다 한참 늦은 오는 6일에서야 신년사를 낼 예정이다. 당초 현대차그룹은 오는 3일 경기도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신년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무안공항 참사 관련 국가애도기간을 고려해 6일로 개최 일정을 미뤘다.


현대차그룹 신년회는 그룹의 새해 경영 방침 등을 임직원에게 공유하는 자리로, 정 회장은 지난 2019년부터 매년 신년회를 통해 경영방침과 비전 등을 발표했다. 6일은 국가애도기간 이후긴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다소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최대 경제계 새해맞이 행사인 ‘신년인사회’도 예년처럼 활기찬 분위기를 띠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오는 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2025년 신년인사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행사 일정이 국가애도기간과 겹친다는 점에서 한때 연기 여부가 검토됐었으나, 애도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행사 시작 전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 등 애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신년인사회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을 필두로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인, 경제단체장 등 경제계 인사 뿐 아니라 정‧관계, 주한외교사절 등 각계 인사가 모여 새해 국가 경제를 위해 협력하자는 의지를 다지는 자리다.


특히 탄핵 정국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경제 위기 극복과 재도약 의지를 표명하는 상징적 이벤트로 기대를 모아왔지만, 무안 참사로 다소 위축된 분위기가 불가피해졌다.


참석자 면면도 예년만큼 화려하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통령과 대통령 대행을 맡았던 국무총리의 잇단 탄핵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상황에서 무안 참사까지 더해지며 주요 인사들이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행사 참석을 꺼릴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매년 초마다 경영환경 불확실성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올해처럼 분위기가 암울한 것은 처음”이라며 “기업별로 위기 극복의 해법을 제시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정국 혼란이 안정되고 기업 활동에 매진할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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