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 규합 역할' 당부하면서도
金 제시한 '2단계 개헌'에는 거리둬
야권 "무신불립" "의전적 절차" 혹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친문 적자'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시작으로 비명(비이재명)계 대권 잠룡들과 연쇄 회동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김 전 지사에 이어 김부겸 전 국무총리,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잇따라 만날 예정으로, 표면적으로는 '통합행보'를 본격화 한 모양새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보가 계파갈등 고조에 따른 비명계의 반발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함이란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조기 대선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여주기식 행보를 하는 것이란 관측도 끊이지 않는다. 김 전 지사와의 회동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가 비명계의 견제 수위와 비판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13일 이재명 대표와 김경수 전 지사는 국회 본청에서 만나 당내 통합에 대한 한 목소리를 냈다. 두 사람의 회동은 김 전 지사가 비상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유학 중이던 독일에서 급거 귀국해 이 대표를 만난 이후 두 달여 만에 이뤄졌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4시 30분쯤 국회본청 식당에서 회동을 시작했고, 모두발언과 배석자 없는 독대를 포함해 1시간 여 동안 일정이 이뤄졌다. 두 사람은 정권교체를 위한 연대 등 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했지만, 통합의 구체적 방식이 거론되지 않았고 개헌 등 각론을 두고도 시각차를 좁히지 못했다.
먼저 모두발언에서 이 대표는 김 전 지사의 복당을 축하하고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지금 (비상계엄 여파 등)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했다. 이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정말 민주당이 더 크고 넓은 길을 가야 할 것 같고, 김 전 지사의 (포용 요구) 지적이 완벽하게 옳다"라고 했다.
또 이 대표는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 파괴세력, 반(反)국민세력들이 준동하고 있는데 이런 헌정파괴 상황을 극복하고, 우리의 가장 큰 가치라고 할 수 있는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일과 국민의 삶을 지켜내는 일이 정말로 중요하다"며 "헌정수호세력 그리고 내란극복을 위해 동의하는 모든 세력들이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대표는 '헌정세력수호연대'를 언급하면서 "어쨌든 있는 힘을, 모든 범위 내에서 최대한 모으자.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국민들께 희망도 드리고 대한민국이 다시 우뚝 서는 그 길에 우리 김 전 지사와 함께 손잡고 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에 김 전 지사는 "이 시대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선 첫째로 더 넓고 강력한 민주주의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대표도 동의해 줬듯 이런 연대만이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또 김 전 지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세력과도 손을 잡고 정권교체를 이뤄낸 바 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친명(친이재명) 외 계파의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당내 분위기와 팬덤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김 전 지사는 민주당이 더 다양해져야 한다"며 "다른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극단과 배제의 논리는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는 일침도 가했다.
언뜻 보면 두 사람이 당내 통합의 당위성에 공감하면서 계파 간 갈등의 확전은 막은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합 방식과 개헌 등을 둘러싼 이 대표의 거리두기는 여전해 이 점은 뇌관으로 잠복할 전망이다.
이날 민주당 당대표 수행실장인 김태선 의원, 김 전 지사 측 김명섭 대변인은 회동이 끝난 후 취재진을 만나 양측의 비공개 회동에서 나온 대화 내용을 전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치욕스러워하며 당을 떠나신 분들에 사과하고 이들이 돌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요구를 했었는데, 이 부분과 관련한 성과는 이날 회동에서 도출하지 못한 모양새다.
이와 관련한 언급이 있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태선 의원은 "그에 대해서 두 분 다 구체적인 얘기가 없었다"고 답했다.
'세력 확장을 위해 보듬어야 할 대상에 대한 논의가 있었나'란 질문에도 김 의원은 "구체적으로 어느 인물이나 대상을 말씀하신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또 김 전 지사는 이 대표에게 "원포인트 2단계 개헌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지만, 이 대표는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개헌론에 화답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지사에게 사실상 범야권 규합을 위해 애를 써달라는 당부를 하면서도, 동시에 김 전 지사의 제안은 일축한 것이다.
앞서 김 전 지사는 계엄 방지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시했다. 김 전 지사는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원포인트 개헌을 먼저하고, 이후 오는 2026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이른바 '2단계 개헌'을 추진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자 야권 내에서는 이 대표와 비명계의 연쇄 회동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그치지 않는 상황이다.
이날 야권 원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CBS라디오 '뉴스쇼'에서 이 대표의 당내 통합 행보를 두고 "결국은 무신불립(無信不立)인데 단시간에 그 신뢰가 회복될지는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동안에 지은 죄가 많다"고 했다.
유 전 총장은 "지금 업보가 많이 쌓였고, 더군다나 탄핵이 인용된 대선 치고는 (여야 한쪽으로 지지율 추이가) 원사이드 하지도 않다"며 "그러면 어찌 됐든 좀 다 끌어안아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조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에도 양당의 지지율이 엇비슷하고 이 대표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인 것을 감안한 쓴소리다.
민주당 탈당파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 역시 창당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의 이 같은 행보를 "의전적인 절차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전병헌 대표는 "이른바 최근에 쓴소리를 시작하신 분들하고 순차적으로 만나서 사실상 이제 다른 견해를 듣는 것처럼 포장을 하지만, 사실 본질은 입틀막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 전 지사가 여전히 이 대표를 만나고서도 옳은 소리, 쓴소리가 나가기를 바란다"며 "만약에 김 전 지사가 이 대표를 만나고 기조가 달라진다면, 이 대표의 장식물 정도로 이렇게 위치하기로 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충고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