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4일 미 의회서 "보조금 폐지해야"
전문가 "추가 투자 위한 압박 카드일 것"
"빅테크 확보 위해 미 진출 속도 높여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법'(칩스법) 폐지를 시사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수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이 눈앞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가운데, 업계 안팎에선 트럼프가 내놓은 묘수에서 정치적 의도를 찾아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반도체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수천억 달러를 (보조금으로) 주지만 그들은 우리의 돈을 가져가서 쓰지 않고 있다"며 "반도체법과 남은 것은 모두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미 의회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 직접 "반도체법을 폐지하고 남은 돈을 부채를 줄이거나 다른 데 사용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대통령이 하원의장에게 '지시'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제조 및 연구·개발(R&D) 시설 투자 기업에 보조금을 주도록하는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 정책 중 하나다. 보조금 총액은 527억 달러(한화 약 75조원)로 미국 인텔·마이크론,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지급 대상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37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미국 테일러에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짓기로 하고 47억4500만 달러(약 6조8800억원)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웨스트 라파예트에 AI(인공지능) 메모리반도체용 패키징 공장을 짓기로 하고 최대 4억5800만 달러(약 6640억원)의 직접 보조금과 5억 달러 대출을 확정했다.
보조금을 받기로 예정돼 있던 국내 기업들에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반도체법 폐지로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면 양사의 현지 공장 건설에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현재 미국 내 원자재비 및 인건비가 급등해 부담이 큰 상황으로, 보조금 지원까지 없어지면 공장 준공에 차질이 빚이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 안팎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또다른 '협상 카드'로 봐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병훈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그동안 투자 규모를 축소하는 등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며 "트럼프는 엄청난 협상가다. 이런 상황을 달갑게 보지 않으며 추가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 카드를 내놓은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도 "트럼프도 보조금 폐지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미 정부 입장에서도 보조금 지급은 향후 일자리 창출 등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투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반도체 기업들의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용 카드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만 TSMC는 1000억 달러(145조원)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당초 계획했던 650억 달러에 추가되는 것으로 총 투자 규모는 1650억 달러(240조원)에 달한다.
일각에선 보조금 폐지에 따른 위협보다 미 현지 빅테크를 고객사로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큰 위협일 수 있다며 보조금 지급 여부와 상관없이 투자에 속도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환 교수는 "미국에서 빅테크 기업들을 확보하게 되면 거기서 나오는 이익이 보조금을 우습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며 "지금은 부담이 조금 될 수 있겠지만, 관세 조치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빅테크를 잡기 위해 미 현지 진출에 속도를 늦추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반도체법이 폐지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만큼 기존 판을 갈아엎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인 척 슈머는 트럼프의 반도체법 폐지 시도가 실패로 끝날 것이라며 "이 법은 미국의 미래를 위한 것이며 우리는 이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