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 정말로 백종원 로또 방송으로 전락하나
<하재근의 이슈분석> 감동 스토리에서 로또 스토리로 전락…불쾌함만 남아
공분 사태를 몰고 다니는 ‘골목식당’에서 또 공분이 터졌다. 이번엔 청파동 숙대앞골목이다. 고로케집과 피자집에서 두 명의 ‘발암’ 캐릭터가 동시 등판해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하고 있다.
화제성과 시청률 호조로 제작진은 웃고 있을 것 같다. 바로 직전 홍탁집 공분 사태도 시청자들을 들끓게 만들었지만, 백종원의 인간개조 해법이 드라마틱한 마법을 일으켰고 결국 감동과 찬사를 이끌어냈다.
제작진은 청파동에서도 백종원의 마법이 펼쳐질 거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사장들이 개과천선하면 다시 한번 시청자들의 찬사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서 문제다. 홍탁집의 경우는 아들에게 시청자들이 분노했지만 불편한 몸으로 가게 일을 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백종원이 홍탁집 개조를 시작한 것도 고생하는 어머니 때문이었고, 시청자에게도 어머니의 존재가 홍탁집 개조를 응원하는 이유가 됐다. 불효자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면서 어머니가 한 시름 놓게 된 것에 시청자도 안도했다.
하지만 이번 청파동 피자집이 백종원의 마법 덕분에 인기 가게로 자리매김했다고 해서 시청자가 감동하고 안도할까? 정반대다. 오히려 더 분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건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골목식당’은 요령이 부족하거나 마케팅을 못해서 절박한 상황에 처한 골목 업주들을 돕는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간절히, 그리고 성실하게 장사를 하는데 몇 가지가 부족해 외면 받은 영세 업주들을 백종원이 기사회생시키는 것은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기본이 안 된 업주에게 방송이 하루아침에 대박을 안겨주는 것은 이런 취지에서 벗어난다. 시청자가 기대하는 광경도 아니다. 시청자는 이번 함흥냉면집처럼 장인의 기술을 지켜오면서도 마케팅이 부족해 폐업 위기에 몰린 업소가 마침내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는 풍경에 기분 좋은 감동을 느낀다. 이런 게 사필귀정이고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열의 없는 사장에서 억지 대박을 안겨주는 것에 대해선 프로그램 초기에 백종원이 이미 정의한 바 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솔루션은 그저 로또에 불과하다”
백종원은 아무에게나 무작정 로또를 안겨주는 방송은 하지 않겠다고 했고 시청자는 지지를 보냈다. 만약 이번 청파동 편에서 피자집이나 고로케집이 백종원 마법으로 드라마틱한 대박을 맞게 된다면 그게 바로 로또가 된다. 프로그램이 하지 않겠다고 했던 그 로또방송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청파동편이 문제다. 이곳 두 업소의 사장들은 장사에 대한 실질적인 준비가 전혀 없어보였다. 고로케집 사장은 조보아와 같은 수준의 꽈배기 제작 실력을 보유한 것에 대해 부끄러움조차 없었고, 피자집 사장은 음식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의 결과물을 시식단에게 내놓고 끝까지 당당했다. 가게를 연지 얼마 되지도 않아보였다.
세상엔 청파동 함흥냉면집처럼 오랫동안 정직하게 음식맛을 지켜오면서 절박하게 영업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있다. 그런 이들의 노력이 보답 받는 게 바로 정의이고 공정이다. 준비와 열의 없이 가게만 덜컥 열어놨을 뿐인 초보 사장이 방송의 힘으로 하루아침에 대박 급행열차를 타는 것은 그런 성실하고 절박한 업주들을 힘 빠지게 하는 일이다. 그러니 정의가 아니고 공정하지도 않은 것이다.
아무리 드라마틱한 백종원의 마법이 펼쳐진들 이런 구도에 시청자가 공감하기 힘들다. 제작진은 상태가 심각한 업주를 소개하고 백종원이 변화시키는 스토리가 장사가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감동 스토리에서 로또 스토리로 전락하면 시청자에게 불쾌함만 남는 방송이 될 것이다. 이 점을 제작진이 돌아봐야 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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