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지원 대책 차일피일 미루는 정부...부처간 이견 목소리도 나와
골든타임 상실 우려 속 도산 가능성..."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는 항공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가 기간 산업임에도 정부의 미지근한 지원 노력에 고사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전향적인 지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전 항공사들이 휴업과 감원, 임금반납 등의 조치가 잇따르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소극적인 지원에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항공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제선 운항은 거의 중단되다 시피한 상태로 국내선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타항공은 국제선과 국내선 운항을 모두 일시 중단하는 셧다운 조치를 취했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들도 국제선 여객기 운항률은 10%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항공정보포털시스템과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국제선을 합한 항공 여객 수(실시간 통계 기준)는 174만3583명으로 지난 1997년 1월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초로 월별 항공 여객 수가 200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이렇듯 코로나19로 전례없는 경영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정부의 지원은 너무 소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항공업계의 통일된 목소리다. 거의 고사 직전인 항공사들이 자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 2월 17일 ‘항공분야 긴급 지원대책’을 통해 저비용항공사(LCC)에 최대 3000억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하고 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에어서울·에어부산 등에 총 126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단행했다. 또 지난달 말에는 운행중단 노선 운수권 보장, 공항 이용료 감면 확대 등 추가 지원책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추가 대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고 특히 대형 항공사들에 대한 지원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항공기 리스(대여) 비용과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워낙 큰 항공산업의 특성상 현재까지 나온 대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이에 정부가 추가적인 자금지원과 무담보 저리대출 확대, 채권에 대한 지급보증 등 금융 지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다.
특히 전 세계 각국이 항공산업을 살리기 위해 대규모 금융지원에 나선 것을 감안하면 너무 미약하다는 평가다.
미국은 총 580억달러(약 74조원) 규모의 보조금과 대출 지원을 결정했고 독일은 국적기인 루프트한자에 대한 금융지원을 무한대로 설정했다. 또 프랑스와 싱가포르가 각각 450억유로(약 60조5000억원)와 133억달러(16조4000억원)의 금융지원을 하는 것을 비롯, 중국·대만·영국·호주·뉴질랜드 등이 자국의 항공산업이 파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긴급지원에 나서고 있다.
현재 항공사에 대한 지원은 규모만큼이나 시점도 중요해 골든타임(Golden time)을 놓칠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다. 초기 소극적인 대책으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을 수있고 한 번 타격을 받으면 복구하기 어려운 항공 네트워크가 무너진 후의 사후약방문식의 대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람이 죽은 후에 수혈을 하게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규모뿐만 아니라 속도”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정부부처간 온도차로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면서 항공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항공산업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항공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적기에 적절한 지원에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지만 지원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항공사의 추가 자구 계획이 선행돼야 추가적인 자금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는 보수적인 기조를 계속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업계에서는 현재 항공사들의 현실을 감안하면 추가 자구 계획이 가능하지 않다고 호소한다. LCC들은 항공기 조기 반납과 300명 감원을 결정한 이스타항공을 비롯, 다른 항공사들도 직원 휴직과 임금반납 등을 이미 이뤄지는 등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는 상황이다.
또 대한항공은 지주회사인 한진칼이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고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인수 계약을 체결한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 포기 가능성이 나오는 상황에서 오너 사재 출연 등 추가적인 자구 계획이 나오기가 녹록치 않은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속하고도 전방위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하는 이유로 항공산업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항공산업은 국가기간 산업으로 네트워크가 한 번 망가지면 회복하기가 어렵고 외국 항공사들과의 치열한 네트워크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항공사들이 국가 기간 산업을 이끄는 주체라는 사실을 정부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며 ”적기에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서 항공사들이 도산하면 이는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