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적금 깨는 서민들…쥐꼬리 이자에도 돈 맡기는 '가진 사람'
생활자금 넘어 위험한 투자 릴레이…코로나19 속 엇갈린 선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지난 달 국내 5대 은행에서 개인 고객들이 중도 해지한 예·적금은 7조원이 넘었다. 1년 전 같은 달보다 2조5000억원이나 늘어난 액수다. 이처럼 예·적금 통장을 깨면 제대로 된 이자를 받을 수 없음에도, 이를 버티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여기까지만 언뜻 보면 개인이 은행에 맡긴 예·적금 규모도 줄었을 것이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였다. 같은 달 은행들이 확보한 개인 고객 예·적금은 11조원 넘게 불었다.
이는 결국 많은 가계가 예금과 적금을 깨는 사이 누군가는 돈을 넣고 있었다는 해석이다. 소위 말해 가진 사람들은 이전보다 은행 예·적금을 선호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통상 은행 예·적금의 중도 해지 증가는 가계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있다는 반증으로 읽힌다. 그 만큼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 당장 현금이 급한 이들이 늘었다는 뜻일 수 있어서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한파가 개인들의 생활까지 얼어붙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한편에서는 이보다 더욱 불안한 사태의 전조일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은행 예·적금에서 빠져나간 돈이 과거처럼 단순한 생활자금 용도로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식 시장에 흘러 들어갔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증시 악화를 투자의 기회로 여긴, 이른바 동학개미운동 열풍에 편승하고자 예·적금마저 털고 있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0%대까지 추락한 기준금리는 이런 경향을 더욱 짙게 만드는 요인이다. 예금과 적금을 들어 봐야 이자가 얼마 되지도 않으니, 위기를 기회 삼아 투자로 반전을 노려보겠다는 위태로운 도전정신이다.
이런 와중 돈이 있는 사람들은 사뭇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다. 코로나19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성급한 투자에 나서기 보다는 예·적금 이자라도 받으며 잠시 쉬어가겠다는 신중론이다.
얼마 전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하게 된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는 올해 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고 십수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리나라의 금융 문화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펀드 투자 손실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묻자 내놓은 일침이다.
금융은 일확천금을 안겨줄 수 있는 도박판보다는 개인의 삶을 지켜주는 경제적 안전판이 돼야 한다. 급한 생활자금이 간절해 쓰린 가슴을 잡고 은행을 찾은 서민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거친 비바람 속에서 도리어 위험한 베팅에 나서려는 이들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 쥐꼬리 이자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군가가 왜 예·적금에 자산을 맡기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