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떠안은 개헌 과제
헌법을 우회하는 책략도 있다
노동자가 사회의 주류 됐다고?
청와대는 개헌을 시도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강기정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1일 기자들에게 “청와대와 정부는 전혀 개헌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강 수석과 함께 참석했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개헌 추진과 관련해 당과 지도부 내에서 검토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보장은 없다. 자리가 바뀌면 그만인 대통령의 참모, 여당의 당직자일 뿐이다. 그 사람들 개인 의견 정도로 들어둘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에 주목하는 게 좋겠다. 그는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 추진 동력을 되살리는 것은 이제 국회의 몫”이라고 말했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떠안은 개헌 과제
자신은 다시 개헌안을 발의하는 일이 없겠지만 대신 여당이 이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그는 예지력을 발휘한 셈이 됐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한 것이다. 여당만 180석, 범여권으로는 190석을 확보했다. 개헌선에 10석이 모자라지만 정권적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숫자 채우기는 여반장이다.
이 원내대표야 뭐라든 이미 당내에서는 구체적인 개헌 방향까지 제시되고 있다. 원내대표에 출마한 김태년 의원은 일전에 ‘기업 이익 공유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이미 지침성 언급을 해둔 바 있다. 지난달 22일 기업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대신 (기업들의) 이익을 국민과 공유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좌파 정치인들의 염원이 되다시피 한 토지 공개념 관련 발언도 나왔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출신인 민주당 이용선 당선자는 토지공개념 개헌이나 그것을 실현할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권측은 분명히 개헌을 시도할 것이다. 21대 국회 들어서기 무섭게 가장 먼저 추진할 것이 개헌이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지금은 압승에 따른 국민의 경계심을 촉발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슬쩍 슬쩍 밑자락 깔기를 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런데 범야권 의석도 110석 가까이는 되는 만큼 개헌이 보장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럴 경우 민주당에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우선 이번 국회에서 시도했지만 무산될 게 뻔한 ‘국민개헌발안제’를 21대 국회에서 다시 시도하는 방법이다. 이 안에 대해서는 미래통합당 22명, 미래한국당 1명이 함께 서명했던 만큼, 다음 국회에서도 설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하겠다. 일단 국민발안제만 되면 ‘100만 명의 힘’으로 개헌을 밀어붙일 수 있다. 국민 100만 명이 서명한 개헌안이라는데 야당이 쉽게 부결시킬 수 있겠는가.
헌법을 우회하는 책략도 있다
이런 책략도 통하지 않으면 현행대로 가는 방법도 있다. 사실 현행 헌법 하에서라고 정권측이 마음먹은 일을 포기해야 할 필요가 없다. 말하자면 ‘헌법 우회술’이라 하겠는데, 지금까지 문 정권이 구사해왔던 전술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국체를 선언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지키고자 하는 질서의 대강을 정한 기본 얼개다. 구체적인 행위에 대한 판단 기준은 대개 법률에 유보돼 있다. 그러니 대통령이 마음만 먹는다면 뭐든 가능하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지 않는다고 제도를 만들지 못하는 게 아니다. 우리 헌법 제23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③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재산권을 법으로 제한하고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헌법에 이처럼 명시돼 있는데 뭐가 문제이겠는가.
기업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도 있다. 제119조가 그 예다.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기업의 자유를 욱죄고 노동권을 강화하면서 배분을 강요하는 명분으로 삼기엔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명기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는 선언은 친북 일변도 통일외교안보정책의 근거로 부족하지 않다.
문 대통령은 노동절인 1일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이며, 주류로서 모든 삶을 위한 연대와 협력의 중심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자기 덕분에 노동자의 힘이 막강해진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도 유념해 달라는 뜻이겠다. 문제는 ‘노동자=사회의 주류’라는 그의 인식이다.
노동자가 사회의 주류 됐다고?
그가 말하는 노동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주역이라고 하는 그 노동자인가 아니면 단순히 기업가의 대척점에 있는 노동자를 말하는 것인가. 하긴 전자이든 후자이든 이 나라가 노동자의 나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하는 나라가 됐다고 대통령이 규정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래도 이것을 헌법에 위반되는 언명이라고 주장하긴 어렵다. 헌법은 제정의 취지와 정신을 개략적으로 담고 있을 뿐이다. 통치세력이 그걸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적용하겠다면 막을 방법이 마땅찮다.
너무 과민한 반응이라고 하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고, 지금의 문 대통령도 그러고 있지만 이들은 끝없이 ‘혁명’을 상찬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혁명의 아들’로 자리매김했다. 앞사람은 ‘시민혁명’, 뒷사람은 ‘촛불혁명’을 자신의 산실로 여기고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한다. 혁명주의자들에게 ‘노동자’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노 전 대통령은 시민혁명으로 지배세력이 교체됐다고 선언했었다. 그래서 천도에 더 마음이 끌리는 듯한 말을 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도 ‘노동자 주류론’을 꺼냈다. 사회의 주류가 바뀌었다는 것은 지배세력이 교체됐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을 터이다. 그게 문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이 공유하는 인식일 것 같기도 해서 두렵다. 이들이 그쪽으로 내달린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마땅찮다. 자유우파 정당이 참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권 측이 여기서 그치려고 할 리가 없다. 총선이 제대로 판을 펴줬는데 뭘 주저하겠는가. 개헌만 할 수 있다면 헌법 우회책략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자신들의 의도와 목표가 반영된 헌법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 심은 훨씬 깔끔하고 강력하다. 반면에 야권과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저항의 명분과 동력을 잃고 만다. 21대 국회 개원을 겁내는 사람들이 많다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