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땐 열정과 패기로 뭉친 돌멩이 같았죠"
"아이다와 엘파바,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그를, 한 번도 선택하지 않은 제작사는 있지만, 한 번만 선택한 제작사는 없었다. 2017년 데뷔 이후 불과 4년 만에 '적벽'에 세 차례, '1446'에 두 차례 무대에 오를 만큼, 그에 대한 제작진의 신뢰는 두터웠다.
뮤지컬배우 김하연은 아직 많은 작품을 경험하지 않았고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도 아니지만, 신뢰받는 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에서 밝은 미래가 점쳐진다. 필모그래피를 쌓아갈수록 그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들도 하나둘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고등학교 때 뮤지컬배우 소냐의 '아이다'를 보고 뮤지컬에 빠져들었다는 김하연은 언젠가 '아이다'와 '위키드'의 주연으로 우뚝 설 날을 꿈꾸고 있다. 데뷔 시절의 열정과 패기에 경험과 노하우가 더해진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언젠가 무대 중앙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김하연의 모습이 기대된다.
뮤지컬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나요?
- 사실 처음에는 뮤지컬을 잘 몰랐습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친구들과 뮤지컬 '아이다'를 보게 됐는데, 그때 소냐 배우님이 연기하는 아이다를 보고 푹 빠졌어요. 바로 다음 날 공연을 예매해서 또 보고 난 후 나도 언젠가 꼭 '아이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마음 하나로 점차 뮤지컬에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첫 작품 '적벽'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 2017년 운 좋게 조자룡 역으로 캐스팅돼 데뷔하게 됐어요. 그땐 관객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적벽'의 모든 에너지를 다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정말 온몸이 부서져라 춤추고 소리도 미친 듯이 질렀던 것 같습니다. 목이 잘 쉬지 않는 편인데 공연만 끝나면 목이 갈라졌었으니 정말 그때는 기술 없이 열정과 패기로만 똘똘 뭉친 돌멩이 같았죠.
배우로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나요?
- 제가 슬럼프가 왔다고 느낄 때는 항상 표현에 대해 깊게 고민에 빠졌을 때였습니다. 조금 더 좋은 소리를 내고 싶었거든요. 깔끔하고 자연스럽게, 혹은 더 과장되게 등. 표현을 자유롭고 더 설득력 있게 하려면 해내야만 할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이 쉽지 않았을 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럴 때는 욕심을 좀 버리고 나에 대한 환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요.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아 고생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슬럼프가 왔다 싶으면 한동안 생각을 아예 멈춰버립니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잠잠해질 때 다시 영상을 찾아보면서 다시금 열정을 얻고 멈춰있던 동안 얻은 여유와 열정으로 천천히 다시 시작합니다. 결국 저에게 슬럼프는 욕심이 만들어 낸 조급함이기 때문에 일시정지를 선택하는 편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역시 '적벽'이겠죠?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지만, '적벽'은 창작 때부터 함께 했기에 더욱 특별한 것 같아요. 에피소드라면, 조금 더 날렵한 조자룡을 만들어내기 위해 만들었던 '의상에 부착된 화살통'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부채가 등장하는 순간이 임팩트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는 것처럼 뒤에서 부채를 꺼낸다면 정말 멋있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의상을 담당한 친구에게 천을 들고 가 혹시 대충만 꿰매줄 수 있겠냐고 해서 정말 대충 꿰매서 연습을 들어갔는데, 아무래도 안무가 격하다 보니 꺼내기도 전에 꿰맸던 천이 반쯤 떨어졌어요. 뒤에서 부채랑 같이 덜렁덜렁하고 있었죠.
뒤에서는 이미 배우들이 웃고 있었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멋있게 뒤로 손을 뻗었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둥거리다가 결국 앞에 있는 연출진까지 웃게 했습니다. 결국 부채는 떨어져서 뒤에 있는 배우가 주워줬는데 안무 감독님께서 좋다고 해주셔서 튼튼하게 달아 공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추억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조자룡의 카리스마는 조금 덜하지 않았을까 싶어 가끔 뿌듯합니다.
때로는 여러 역할을 책임져야 하고, 춤과 노래, 연기를 모두 소화하려다 보면 힘든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워낙 체력이 좋기도 하고 틈틈이 운동을 하는 편이라 아직 체력적으로 심하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공연이 시작되면 컨디션 유지를 위해 한 끼 정도만 먹고 잠을 아주 충분히 자면서 체력을 보충합니다.
배우로서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선배 배우가 있나요?
- 제가 '적벽'에서 소리를 접하게 되면서 뮤지컬배우 차지연 배우님을 존경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서양 곡에서의 다양한 장르뿐만이 아닌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 한 데에 어우르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어떠한 장르도 잘 표현해내어 관객분들께 새로운 장르, 새로운 경험을 드릴 수 있는 독창적인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관객으로서 공연을 볼 때는 일반 관객들과 보는 관점도 다를 것 같아요. 주로 어떤 부분들을 눈여겨보나요?
- 표현에 가장 시선을 많이 두는 편입니다. 배우가 그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해내고 노래로 어떻게 뱉어내는지, 무대와 조명 그리고 음악은 어떻게 그것들을 도와주고 이끌어주는지 등. 모든 에너지가 하나의 표현을 위해 힘을 내 맞춰질 때 감동도 받고 배움도 얻는 것 같아요.
앙상블 배우로서 힘든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튀는 것보다는 어우러져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하고 싶은 표현들을 100%로 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힘들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선배 배우님들을 보면서 무대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고, 더 나아가 그것들을 무대에서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이기에 저는 배움의 자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공연계가 어려운데 배우로서 느낌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많은 공연들이 취소되고 중단돼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적벽'을 통해서도 느껴봤기에 많은 배우들이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적벽'은 지난 2월 14일 정동극장에서 개막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3차례 휴연 끝에 결국 전면 취소됐다). 영상도 좋지만 무대에서 살아있고 그 생기를 객석에서 느끼는 것만큼 큰 감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른 상황이 좋아져 생기있는 하루 그리고 무대를 만나고 싶습니다.
끝으로 향후 계획과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뮤지컬 토크 콘서트'를 끝마쳤습니다. 다음 작품도 정해져 연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기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가까워질 때쯤 SNS를 통해 알리겠습니다. 하고 싶은 작품은 뮤지 배우의 꿈을 갖게 해준 뮤지컬 '아이다'의 아이다, 그리고 '위키드'의 엘파바 역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꼭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