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마음에 없었던 선대위 참여 필요 없고 해서도 안 돼
洪 20~30세대 지지는 일종의 착시, 경선 후 여론조사 보라!
한국 사람들, 특히 한국 언론들은 매우 도식적인 경향이 있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최종 경선에서 윤석열이 홍준표를 꺾자마자 윤이 홍을 어떻게 껴안을지에 관심을 집중했다. 홍의 당연한, 세 문장 승복 연설에 감동을 연발하더니 하루 뒤 선대위 불참 의사를 분명히 하는 한마디를 하니 금세 분열이니 어쩌니 한다.
미국의 전 대통령 오바마는 그의 본선 경쟁자 맥케인이 참석한 한 토론회에서 그가 자신의 정책에 대해 당파적으로 비판을 하자,
“선거는 끝났다.”
라고 냉정하게 일축한 적이 있다. 그는 지금 미국을 이끄는 대통령인데, 맥케인이 마치 아직도 선거 라이벌처럼 생각하고 자기를 터무니없이 공격한다고 봐서 그렇게 매몰차게 말을 한 것이었다. 맥케인이 머쓱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쓴 웃음만 지은 건 물론이다.
윤석열은 오바마처럼 못하고 안할 것이다. 한국인들 정서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승자의 아량에 대한 도식적(圖式的, 사물의 본질이나 구체적인 특성을 밝히기 위한 창조적 태도 없이, 일정한 형식이나 틀에 기계적으로 맞추려는 경향 같은 것)인 시각 때문이다.
홍준표는 경선 직후 페이스북에 이렇게 자기 생각을 적었다.
“사상 최초로 검찰이 주도하는 비리 의혹 대선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이번에 저를 열광적으로 지지해 준 2040들의 놀이터, 청년의 꿈 플랫폼을 만들어 그분들과 세상 이야기하면서 향후 정치 일정을 가져가고자 합니다. 나머지 정치 인생은 이 땅의 청·장년들과 꿈과 희망을 같이 하는 여유와 낭만으로 보내고 싶습니다.”
그가 첫 문장만 말하지 않았다면, 그런대로 그 심경을 이해하고 무운(武運, 전쟁 따위에서 이기고 지는 운수)을 빌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상 최초로 검찰이 주도하는 비리 의혹 대선’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아마도 집권 여당 최종 후보 이재명이나 제1야당 최종 후보 윤석열이나 검찰 수사를 받는 비리 의혹 대상자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재명은 그렇다 치고, 윤석열을 비리 의혹 인물로서 이재명과 동급으로 치부한 저의가 참으로 안타깝다. 그는 빈말이었든 참말이었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겠다”는 말을 상대 후보에 대한 마지막 언급으로 끝냈어야만 했다.
윤석열의 비리 의혹이니 리스크니 하는 것들 중에 본인에 해당되는 종류는 검경과 공수처가 그렇게 탈탈 털었어도 아직까지 증거 하나 제대로 찾아낸 것이 없고, 장모와 처 문제는 설사 있다 하더라도 결혼 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홍준표는 경선 과정에서 줄기차게 여권 프레임으로 윤석열을 공격하더니 패배 후까지 저러고 있다.
그리고 그 며칠 뒤에는 분이 덜 풀렸는지 거기서 더 나갔다. ‘여야 두 최종 후보 중 한 사람은 감옥에 갈 참혹한 대선’이 될 것이란다. 이 사람이 진정 보수 야당의 예비 후보였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뒤끝 저주다. 이름값과 나잇값을 못하는 대실수를 그는 정치 인생 막판에 저지르고 있다.
그는 보수우파 지지자들에게 정권교체 희망을 품게 하고 밥맛을 살아나게 한 윤석열 검찰의 조국 수사에 대해 가족을 도륙(屠戮)한 과잉 수사였다고 비난했던 사람이다. ‘조국수홍’으로 엄청난 역풍을 맞을 뻔했으나 국정원장 박지원과 ‘정치 지망생’ 조성은의 제보 사주(唆嗾) 의혹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여론조사에서의 여권 표(역선택)를 노린 자충수(自充手. 바둑에서 자기의 수를 줄이는 돌, 즉 상대방에게 유리한 수)였다.
홍준표와 그의 지지자들은 그들이 왜 보수당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는지 숙고해야만 한다. 그런 인간성, 정권교체 대의(大義)를 망각한 소인배적 전략에 등을 돌린 것이란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물론, 이해는 한다. 패자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패인(敗因)을 찾고 싶어 하고 졌지만 지지 않았다는 얘기만 귀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지지자들도 언론에 홍준표라는 이름이 어디 구석에라도 계속 나오기를 바라고, 그 내용이 조금 동정적인, 억울해 하는 것이어야 위로가 되는 법이다.
하지만 홍준표를 붙잡지 못하면 20~30 표가 없어진다는 류의 초등학교 산수 같은 분석과 전망은 읽고 듣기에 민망하다. 필자는 애초에 홍준표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고, 홍준표와 38세 당 대표 이준석을 보고 그들이 입당 러시를 이뤘으며, 홍준표가 탈락하자 이제는 또 탈당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보도들을 접하면서 강한 의구심을 가졌다. 납득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준표 지지도(보수 후보 적합도) 중 약 15% 포인트로 추산되는 역선택 표심과 함께 혼합이 돼 나타난 일종의 착시(錯視) 또는 조작이 아닌가 했던 그 의문이 상당 부분 풀리는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 하나 나왔다. 홍준표가 없어진 지난 5일 오후 4시 이후 하루 동안 실시한 PNR 조사에서 20대의 윤석열 지지도가 전체(45.8%)보다는 12% 포인트 낮은 33.6%이나 이재명(전체 30.3%, 20대 23.2% )보다는 10% 포인트 높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 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실제 민심이 이러한데, ‘노인의힘’이 개혁적인 젊은이들을 배신했다는 둥의 세대 갈등론을 부각시키는 건 패자 동정을 넘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보수우파의 분열을 바라는 세력의 시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홍준표는 윤석열 선대위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분한 마음을 달랠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갖도록 하고, 애초 마음에도 없는 일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그는 이제 자유인이다. 가고 싶은 자기 길을 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사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수용하는 복기(復棋)의 시간은 가져야 한다. 그에게 우호적인 언론과 지지자들도 이제 그가 그런 시간을 갖도록 가만히 놔두었으면 한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