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사태 속 ‘휴장 없이 정상 개장’ 결정
3일 늦은 밤부터 4일 오전까지 대책 회의 분주
탄핵 정국 가능성 등 정치적 혼란에 우려 여전
한국거래소가 한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사태에도 국내 증시를 정상적으로 개장한 뒤 비상 대응 체계를 이어가고 있다. 당초 거래소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도 정상 운영 계획을 밝혔으나 이후 ‘미정’으로 입장을 정정했는데 이후 계엄 해제로 결국 정상 개장을 결정하는 등 약 9시간 동안 긴박한 상황이 계속 전개됐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가 일단락 되면서 한국거래소가 증시를 정상 운영 중인 가운데 시장에서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거래소는 단기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에도 정상 개장을 결정한 만큼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거래소는 전날(3일) 오후 10시 반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시작으로 다음날 오전 1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과 오전 4시30분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발표를 거쳐 이날 오전 7시30분쯤 증시 정상 운영을 확정하기까지 약 9시간 동안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앞서 늦은 밤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등 금융 시장은 대혼란을 겪었다. 45년 만에 발동된 기습 비상계엄에 원·달러 환율과 야간 파생상품 시장, 가상자산 등이 일제히 요동치면서 국내 증시가 받을 충격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로 4일 증시 개장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이에 거래소 측은 3일 오후 11시30분쯤 다음날(4일) 증시를 정상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등 증시를 정상 개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언론들이 이를 속보를 다룬 직후 거래소는 다시 장 운영 여부에 대해 ‘미정’이라고 정정 발표했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더욱 커지고 경제·금융 관련 수장들이 심야 긴급 회동을 가지면서 입장을 정정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3일 오후 11시 40분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를 소집했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F4 수장들이 참석했다. 이에 거래소 관계자는 “일단은 4일 정상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지만 F4 회의 결과 등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보다 신중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후 거래소도 상황 대응을 위해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4일 오전 1시 시장 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제 1차 비상시장점검회의를 개최해 대응 방안 긴급 논의에 돌입했다.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거래소는 이 날 오전 2시 18분쯤 기자단에 문자 공지를 통해 “밤새 우리 증시 관련 해외상품들의 거래 동향을 면밀히 살핀 후 4일 오전 7시30분경 정상 운영 여부를 확정하겠다”고 다시 한번 안내하기도 했다.
이어 정 이사장은 오전 7시 전체 간부를 소집해 제 2차 회의를 개최한 뒤 오전 7시반쯤 증권시장과 파생상품시장을 평소와 같이 열기로 최종 결정했다. 국회의 요구로 계엄이 해제됐고 국내 증시 관련 지표가 점차 안정화됐다는 판단 하에 따른 조치다.
실제 주식시장이 열리기 전에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가 이뤄진 만큼 시장의 우려에 비해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1%대의 약세로 마감했다. 코스피는 장중 한때 2.31% 내린 2442.46까지 밀리기도 했지만 이후 낙폭을 점차 축소하면서 1.44% 하락한 2464.00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은 전장보다 1.98% 내린 677.15로 종료하며 2% 가까이 떨어지긴 했으나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진 지난 2일(-2.33%)보다 하락 폭이 적었다.
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된 만큼 향후 국내 증시의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시장의 우려는 여전하다. 야6당이 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탄핵 절차에 돌입하는 등 정치적 혼란이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이미 심화된 외국인 매도세를 자극하면서 엑소더스(대탈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도 높아졌다. 글로벌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나인티원의 마크 레저-에반스 투자 분석가는 “이번 일은 한국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 우려를 증가시킬 전망”이라며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이 요구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사모펀드운용사 칼라일의 제이슨 토마스 글로벌 리서치 투자전략 책임자도 “장기적으로 정치적 문제가 있다”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 우려가 크기 때문에 당국과 거래소도 시장을 개장하는 것이 외국인들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다만 당국의 조치에도 정국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외국인 이탈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