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극장으로⑯] 서울 창신동 뭐든지소극장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봉제거리 역사와 함께 물들어가는, '뭐든지 아트하우스'
‘도성 밖 첫 마을’ ‘봉제거리’ ‘절벽마을’ 등으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빌딩 수 사이 시간이 멈춘 듯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낡고 붉은 벽돌 건물들이 다닥다닥 밀집돼 있다. 한때는 3000곳이 넘는 가내수공업 형태의 봉제공장이 빼곡하게 자리했던 곳이다. 여전히 1000여곳에 달하는 봉제공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창신동은 독특하게 다양한 예술가들이 머물다 간 동네로도 유명하다.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을 비롯해 한국 현대 미술을 상징하는 박수근, 60년대 한국 가요의 상징 배호, 청년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생애를 바쳤던 전태일 열사 그리고 ‘영원한 가객’ 김광석도 이 마을에 머물렀다. 그래서인지 2010년 들어 이곳, 창신동엔 젊은 디자이너들이 자리를 잡았고, 다양한 문화예술 플랫폼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가 설립한 복합문화공간 ‘뭐든지 아트하우스’도 그중 하나다. 뭐든지 아트하우스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좁은 골목길 속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최신식 건축물이다. 실제로 이 건물은 2021년 새로 올려졌으니, 올해로 3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뭐든지 아트하우스는 이 오래된 거리와 이질감 없이 봉제거리와 어우러진다. 창신동 봉제거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가고자 건축단계에서부터 마을과 어우러질 수 있는 조화로운 디자인을 선택하면서다.
빨간 벽돌을 켜켜이 쌓아 올려 주변 건물들과 통일감을 주고, ‘한양도성 밖 첫 마을’이라는 상징도 적용했다. 지하1층은 소극장을, 1층은 책방과 카페를, 2층은 공유 오피스를, 6층은 루프탑을 만들면서도 곳곳에 지역의 상징과 문화적 요소들을 세심하게 배치했다.
┃“창신동이 준 묘한 위로감, 이곳이 내 ‘연극터’ 되겠구나 느껴”
“2012년에 경희궁에서 장영실과 세종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고궁 뮤지컬을 기획했는데, 쫄딱 망했어요. 그해에 태풍이 세 번이나 왔거든요. 그 당시 사무실이 대학로였는데 우연히 발길이 닿는대로 걷다가 이곳에 왔는데 묘한 위로감이 있더라고요. 왜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순간 ‘이곳이 내 연극터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트브릿지 신현길 대표는 그 길로 바로 창신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2012년엔 창신동 산마루턱에 주민들과 함께 ‘뭐든지 도서관’을 만들고 이듬해 ‘뭐든지 예술학교’도 설립했다.
“연극이라는 게 참 힘든 직업이잖아요.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생명이 언제 끝나버릴지 모르는 작업을 꿋꿋이 해야하는…. 창신동에서 그걸 느낀 것 같아요. 저기 간판이 ‘미용실’이죠? 그런데 문 열어보면 봉제공장이에요. 웃기죠? 사실 봉제도 사양 산업이라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주6일 계속 작업을 하세요. 여기 앉아서 밖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동네가 활기찬지 몰라요. 끊임없이 오토바이가 컨베이어벨트처럼 왔다갔다해요.”
창신동의 ‘활기’에 매료된 신 대표의 프로그램엔 자연스럽게 그 애정이 묻어났다. 화가 박수근의 가난한 창신동 시절을 다룬 연극 ‘쪽마루 아틀리에’를 만들었고, 극단 학전 김민기 대표의 전설적인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창신동의 실제 봉제공장 주민을 배우로 내세워 재구성한 음악극 ‘창신, 공장의 불빛’을 무대에 올렸다. 이밖에도 ‘뭐든지 예술학교’를 통해 실시한 ‘봉제 체험’이나, ‘꼭대기 장터’ ‘창신동 문화밥상’ 등도 신 대표의 창신동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활동들이다.
“사실 정동극장,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공연을 하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그게 익숙하기도 했고요. 실제로 올렸던 공연만 봐도 ‘소년, 이순신 무장을 꿈꾸다’ ‘세종, 인재를 뽑다’ ‘정약용과 함께 하는 실학여행’까지 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체험형 연극이잖아요. ‘조선딴스홀’도 그렇고요. 지금도 큰 틀에선 다르진 않아요. 다만 지금은 조금 더 ‘지역’과 ‘공간’의 특성에 맞는 공연이나 축제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다만 창신동 일대는 노후 주거지로 오랫동안 재개발 필요성이 제기되는 동시에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2013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 1호 도시재생사업지구’로 지정한 창신동 일대 재개발 계획을 밝혔다.
“창신동에 10여년 전 뉴타운 재개발 문제가 있었잖아요. 그 당시에도 주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이 갈려 갈등이 있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그 상처를 문화예술을 통해 치유했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희가 ‘꼭대기장터’ ‘문화밥상’ 등의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배우, 연주자들이 도시락을 봉제공장에 배달해주고 공연, 전시 등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그게 바로 지역에서 우리 문화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또 이런 재개발 이슈가 벌어졌는데,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아 씁쓸해요.”
신 대표는 “창신동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마을”이라며 “이 동네에 오는 사람들에게 꼭 초입부터 이 길을 걸어서 오라고 말한다. 그래야 이 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모두 알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뭐든지’의 역할도 분명했다.
“인큐베이터로써의 공간이 될 수 있었으면 해요. 뭐든지 책방엔 그림책을 많이 놔뒀고, 뭐든지 소극장엔 바닥 보일러를 깔아놨어요. 남들이 보면 ‘그게 뭐?’라고 할 수 있지만, 부모와 자녀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보고, 음악도 듣고, 연극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놀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두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돼야 문화예술에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