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석방 변수에 발등 불 떨어지면서
정치권 뒤흔들었던 'K엔비디아' 수면↓
구속취소 직전까지도 'AI' 강조했지만
상황 급변하면서 '기업' 관련 공약 스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쏘아올린 '한국형 엔비디아' 이슈가 수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취소 소식이 알려지기 직전까지도 당내 인공지능(AI) 기구를 직접 진두지휘하는 등 조기대선을 염두에 두고 AI 관련 정책 주도권 확보에 사활을 걸었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최근 '중도보수 정당' 선언까지 불사하며 표면상 친기업 행보에 열을 올렸지만, 주말을 거치며 조기 대선 성사 분위기가 주춤해졌다. 이에 민주당의 '성장 담론'은 오간데 없이 실종된 모양새다. 이 대표가 대정부 공세에 당력을 쏟으면서 성장 담론은 뒷전이 되고 속내가 복잡해진 것이다.
지난 8일 윤 대통령이 석방되면서 이 대표는 중도층을 공략하는 사실상의 대선 공약 메시지를 내던 것을 중단했다. 당장 이날 오전에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는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데만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했다.
이 대표는 지난 5일에는 한국경제인협회 대표단과 만남을 가졌고, 이어 7일 오전까지도 AI 관련한 정책 저변을 늘리고 있었지만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최근 이 대표는 'K 엔비디아'의 탄생을 전제로 하면서 기업이 민간 지분 70%, 국민 지분 30%로 구성되면 세금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올 것이란 주장을 펼쳤다. 이것이 정치권의 가장 큰 논쟁거리로 떠올랐고, 이 대표는 이것이 '우클릭을 가장한 사회주의'라는 여당의 공세에 직접 반발도 서슴지 않았던 상황이다.
이 대표는 지난 5일 열린 최고위에서도 "AI 분야에 대한 정부투자, 재정투자뿐만 아니라 국가적 단위의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발언하며 논란을 적극 수습했다.
지난 7일 AI 강국위원회 주관 토론회에서는 "원래 당대표가 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일이 잘 없는데 AI강국위원회는 매우 중요하고 당으로서도 주력해야 될 부분이어서 내가 위원장을 맡게 됐다"며 "(국민의힘이) 일부러 곡해를 했는지, 오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공산당이냐, 사회주의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다행히 그런 엉터리 반격 때문에 국민들께서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돼서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당도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국민펀드'를 언급하며 이 대표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국민·기업·정부·연기금 등 모든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국민참여형 펀드를 최소 50조원 규모로 조성하고 국내 첨단산업이 발행하는 주식이나 채권 등에 집중 투자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과 기업이 투자한 금액에 대해서는 소득공제나 비과세 같은 과감한 세제 혜택도 제공하고, 이를 통해 AI 등 첨단산업 기업은 대규모 자금 확보 및 글로벌 총력전을 선도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단 게 민주당이 크게 힘줬던 정책 방향이었다.
하지만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윤 대통령의 석방 이후 정책보다는 파면을 촉구하는 메시지에 힘을 싣고 있다.
진 의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빛의 연대로 내란수괴 윤석열을 반드시 단죄하겠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윤석열이 풀려난 지난 토요일(8일)부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비상행동에 돌입했고, 국회에서 지도부회의와 의원총회 등 대책을 논의한 후 어제(9일) 저녁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며 "일요일 저녁인데도 수많은 시민들께서 거리에 나와 빛을 들었다.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내란수괴를 신속하게 파면해야 한다"며 "법원과 검찰은 윤석열을 즉각 재구속해야 한다. 흔들림 없이 국민과 함께 가겠다"고 강조했다.
당이 탄핵 인용 여론전 모드로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이 대표는 당초 이날 예정됐던 이광재 전 국회사무총장과의 만남도 '정국 사정'을 사유로 순연하기도 했다. 이외 이 대표가 사전에 예고했던 굵직한 일정은 차기 유력주자로서 '성장'과 '친기업' 기조를 강조하기 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만남이다.
다만 해당 일정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이르면 금주 중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던 상황에서 예고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의 탄핵 선고 결과가 나온 이후 이 대표가 첫 외부 인사를 만나는 일정이 될 수 있단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조기대선 성사 가능성과 관련해 돌발 변수가 생기면서, 향후 해당 일정의 변동 유무 역시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예정대로라면 이 대표는 오는 20일 삼성전자와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서울 역삼동 사피(SSAFY·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방문해 이재용 회장을 만난다. 이 자리에서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위한 지원 방안, 반도체 특별법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통상 문제와 경제 현안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이 대표는 그동안 광폭행보를 보였던 친기업 행보 대신 '집토끼'에 해당하는 중소상공인·자영업자를 국회에서 만나 민심을 단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는 중소상공인·자영업자 생존권 촉구대회 인사말에서는 "아마 오늘 여러분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신 것도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의 삶을, 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개선해보자고 해서 함께 하신 걸로 안다"고 했다.
이어 "이제 정치인들, 대리인들이 이 나라의 운명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이 나라 주권자의 손으로, 이 나라의 운명을, 여러분 스스로의 운명을, 우리 다음 세대들의 삶을 결정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