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헌재를 압박하는 민주당
대통령 취임 전부터 퇴진·탄핵 요구
대통령에게 유독 가혹한 수사기관
더불어민주당이 오늘 저녁부터 헌법재판소 앞에서 천막 장외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나올 때까지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저녁 9시부터 10시 30분까지 천막을 치고 릴레이 발언을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2시에는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저녁 7시부터 8시 30분까지 광화문 탄핵 요구 집회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탄핵 전문 정당이지만 헌재의 심판 결과까지는 예측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바로 문 앞에서 헌재를 압박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헌법재판관들이 다 퇴근했을 시간에 누구 들으라고 연설을 하겠다는 것일까. 좀 의아하긴 하지만 아마도 분위기 돋우기엔 밤이 낫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촛불(더 열이 오르면 횃불도)을 든 군중은 아주 음울하고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2016~17년의 광화문 촛불집회를 재연하고 싶은 것일 수 있겠다.
광장에서 헌재를 압박하는 민주당
민주당의 장외집회와 천막당사의 역사는 유장하다. 이들은 걸핏하면 거리로 뛰쳐나가 소리를 질러댔다. 과거 권위주의 정치 시대에는 국민적 호응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른바 보수-진보 정당 간의 정권교체가 무리 없이 이뤄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이들의 가출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더욱이 21, 22대 국회에서는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한 의회 지배정당이 되었는데도 그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좌파 정치세력은 혁명 지향적이다. 그들은 웅변의 효과를 체득한 집단이며 잘 훈련돼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아고라(agora: 고대 그리스의 광장, 시장, 집회 공간) 정치 애호가(?)였다. 그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2000년 전 아테네에서 시작된 직접 민주정치를 한국에서 다시 경험하고 있다”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 윤 대통령 탄핵촉구 군중 시위와 관련, 자신의 페이스북에 격려문(이라기보다는 격문檄文)을 올렸다.
시위군중의 응원봉 시위를 ‘빛의 혁명’으로 명명했는데, 그 역시 ‘아고라 정치’ 마니아다. 진심으로 아테네 민주정의 재현을 갈망하는 것인지 선동 용어로 구사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좌파는 기본적으로 혁명주의자들이다.
의회를 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행정부와 사법부까지 들었다 놨다 할 힘을 가진 거대정당의 대표가 ‘아고라 정치’의 매력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은 것부터가 광화문 촛불집회 덕이었다. 군중 집회는 참가자들의 열렬한 동조(同調)를 끌어낸다. 참가자들 모두가 동지적 연대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나 시위의 파급효과가 직접적이고 광범위하다는 점도 엄청난 정치적 소득이다.
혁명이라는 것이 대게 군중 시위의 형태로 시작되었다는 점에도 주목했을 법하다. 군중을 잘 선동하면 혁명을 이뤄낼 수 있다는(즉 정권을 뒤엎고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는) 계산인들 안 했겠는가. 의회 내에서는 거대정당이지만 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핑계만 생기면 거리로 광장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덩칫값 못하는 치졸한 방법이지만 정치투쟁의 수단으로는 이만한 게 없다. 그 점에서 꾀 많은 전략 전술이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퇴진·탄핵 요구
그런데 국민의힘은 “민주당처럼 장외투쟁·단식으로 헌재 압박 않을 것”이라고 한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11일 의원총회 후에 그런 말을 했다. 국민의힘다운 결정이다. 이성적·합리적으로 대응한다는 뜻이겠지만 이게 보수 여당의 한계다. 국민의힘은 국회 안에서 거대 야당의 힘자랑에 속수무책이었다. 언론의 보도나 소속 의원들의 의정보고 등을 통해 국민에게 호소하고 지지를 얻어낸다고 했지만,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대국민 직접 호소 방식을 꺼려왔다.
짐작하기 어렵잖다. 몸에 배지 않아서 거리에 나서서 외치기가 어색하고 거북하다. 보수 정치세력 특유의 귀찮음, 성가심 회피증 때문인 것도 같다. 거리에 나서서 지지를 구걸하는 게 체통을 깎는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냉수 마시고 이 쑤시는 따위의 옛 양반행세를 하는 건가? 적당히 남의 뒤에 숨거나 편승하는 데 이력이 난 사람들이라는 인상도 없지 않다. 권 원내대표 말로는 ‘민주당처럼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는, 그런 행동’을 않기로 했다는데 헌재 비위를 안 건드리면 선처하겠다는 약속이라도 받은 건가?
대의 민주정치의 진면목은 의회에서 인내 있는 대화와 설득과 타협이다. 장외 시위는 정당과 국회의원들의 자기 부정이나 다름없다. 거리와 광장에서 직접 국민을 대면해 소리 지르고 고발하고 폭로하고 할 것이라면 국회가 필요할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이치가 그렇다고 해도 거리로 나서야 할 때가 있다. 국민에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줘야 할, 정당으로서의 책무가 요구되면 그에 따라야 한다.
더욱이 국민의힘은 의회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체통 지키느라 의사당, 의원회관에만 머무른다면 거리와 광장은 민주당을 비롯한 좌파 정치세력들의 독무대가 되고 만다. 지금까지도 그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열린 헌재의 탄핵 심판 7차 변론기일 오전 재판이 마무리되기 전에 발언권을 얻어 말했다.
대통령에게 유독 가혹한 수사기관
민주당에는 일상이었겠지만 대통령의 입을 통해 듣는 일개 민생으로서는 새삼스러운 충격이었다. 취임하지도 않은 대통령 당선인을 ‘선제탄핵’이라니! 대선 경쟁 상대였던 정당이, 당선자가 취임 선서도 하지 않았는데 나가라고 요구한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윤 당선자를 지지했던 국민을 뭘로 알고? 원내 제1당이 맨정신으로 그랬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게 아니었다면 집단으로 주사(酒邪)를 부리기라도 했다는 건가?
취임하기도 전부터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을 때까지 기간 중 178회나 그런 압박을 가했다면 이야말로 내란 행위다. 윤 대통령이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형법 제87조)으로 계엄령을 선포할 까닭은 없었다. 그 자신이 최고 통치권자로서 국토와 헌정질서를 수호하는 자리에 있다. 자신을 상대로 권력투쟁을 하려 했다는 것인가? 민주당은 ‘친위쿠데타’라고 몰아세우던데, 그렇게 해서 윤 대통령이 얻을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대통령의 통치권에 대해 중대한 도전이 있었고, 그에 대응할 다른 수단이 없었다면 비상계엄은 체제 방어 수단이었을 수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이재명 당 대표가 취임한 이래 무려 29번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윤 대통령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제외하면 탄핵이 인용된 예가 없다. 작정하고 정부를 무력화시키겠다고 한 것 아닌가. 소나기 특검법 입법, 앞뒤 안 가린 예산 칼질 또한 같은 의도다. ‘내란’이란 바로 이런 경우다.
윤 대통령 체포에 혈안이 된 듯했던 공수처, 역시 현직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로 엮어 정부를 아예 도륙 낼 것처럼 서둘렀던 검찰·경찰이 민주당과 그 주변 정당의 집요하고 거친 내란성 정부 무력화 시도를 치지도외(置之度外)한 까닭은 뭔가. 그 점은 간과했으면서 윤 대통령에게는 (언제 봤느냐는 듯) 가혹하게 대한 것은 오직 사명감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민주당이 겁나서였는가? 헌재가 위세를 떠는 배경은 또 뭔가?
정당 당원증 한 번 가져본 적이 없는 이 필부까지 악몽 속에서 헤매게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정말이지 하루빨리 악몽에서 헤어나고 싶다. 헌재와 검찰‧경찰은 ‘진정한 용기’ ‘진정한 애국심’을 발휘해서 국민을 악몽의 사슬에서 구해주시라. 그게 당신들에게 부여된 존재론적 가치이자 책무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