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속성을 보면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권력을 유지하거나 쟁취하기 위해 누군가와 손을 잡거나 신임을 하면 그 세력이 강해진다. 강해진 세력을 다시 견제하기 위해 제3의 세력과 잡게 되면서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어버린다. 적이 되어버린 동지를 제거하면 함께 적이 된 동지를 친 세력이 부상하게 되면서 다시 처음부터 반복되는 것이다.
5세기 후반 백제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서기 475년 장수왕의 침략으로 인해 개로왕이 전사하고, 아들이자 태자 문주가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고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문주왕은 서기 477년, 병관 좌평 해구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문주왕의 아들인 삼근이 13세의 나이에 재위를 이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은 서기 479년에 세상을 떠났다. 삼근왕의 뒤를 이은 것은 그의 아버지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 중 한 명인 모대였다. 곤지가 당시 왜국에 건너갔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모대는 왜국에서 태어났고, 거기에서 성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근왕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후계자가 없었던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가까운 친척인 곤지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일본서기의 기록을 토대로 1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모대에게는 형인 사마가 존재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왜 모대는 형을 제치고 왕이 되었을까?
머나먼 미래의 일이지만 조선 후기에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흥선대원군은 큰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인 명복을 왕위에 올렸다. 그래야 섭정인 흥성대원군이 몇 년이라도 더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구의 반란을 진압한 것은 진씨 세력이었고, 삼근왕의 후계자로 형인 사마를 제치고 동생인 모대를 선택한 것 역시 아마도 진씨 세력이었을 것이다. 왜국에서 자란 어린 모대를 허수아비 임금으로 세우고 권력을 장악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대는 백제의 스물 네번째 임금인 동성왕이 된다. 처음에는 해구의 반란을 진압한 진로를 병관좌평으로 삼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진씨의 세상이었다. 하지만 재위 8년에 접어든 동성왕은 백가라는 인물을 위사좌평으로 임명한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경호실장 정도 되는데 임금을 가까이서 호위하는 역할이라 위상과 권력은 꽤 높았을 것이다.
백가는 웅진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백씨 가문의 일원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진씨의 권력 독점이라는 작용에 백씨라는 견제 세력이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다. 아마, 진씨의 권력 독점을 허물기 위해서 동성왕의 속내였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서 서기 497년, 병관좌평 진로가 사망하자 후임자로 연돌을 임명한다. 연돌이 해구의 반란에 동참한 은솔 연신과 같은 일족이라면 20년 만에 연씨를 다시 중용한 것이다. 권력의 작용과 반작용은 제대로 작동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동성왕은 다시 한번 견제를 한다. 이번 대상은 15년 전에 위사좌평으로 임명했던 백가였다. 오늘날의 충남 부여군에 가림성을 새로 쌓고 백가를 그곳의 성주로 임명한 것이다. 오늘날의 성흥산성인 가림성은 웅진 다음으로 백제가 도성으로 쌓은 사비성과 금강을 방어할 수 있는 중요한 성이었다. 하지만 15년간 동성왕을 곁에서 지키며 권력을 누린 백가로서는 유배지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병을 핑계로 가려고 하지 않았지만 동성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가림성으로 쫓겨난 백가는 동성왕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해 11월, 백가는 동성왕이 사비서원, 사비성의 서쪽 들판에서 사냥을 하고 웅진으로 돌아가다가 눈 때문에 마포촌에 머문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백가는 지체 없이 자객을 보내서 동성왕을 시해한다. 왕을 지키는 병사들이 있었겠지만 궁궐이나 도성이 아닌 이상 수비는 허술할 수밖에 없었고, 어쩌면 다른 동조세력들이 협조를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암살이 성공하면서 동성왕은 바로 사망하지 않고 한 달 후인 12월에 승하한다. 그리고 그때까지 가림성에 머물던 백가는 기묘한 행동을 한다.
봄 정월에 좌평 백가가 가림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키니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우두성에 이르러 한솔 해명에게 토벌을 명하였다. 백가가 나와 항복하자 왕이 그의 목을 베어 백강에 던졌다.
서기 501년, 동성왕의 형인 사마가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무령왕으로 즉위한다.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가림성에서 반란을 일으킨 백가를 토벌하는 것이었다. 백가는 저항하지 않고 나와서 항복하고 목숨을 잃었다. 아마 동성왕을 죽이면 대성팔족들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것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동성왕의 승하 직전의 기록들은 폭군으로 보일 정도로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대성팔족들은 백가를 지지하는 대신 동성왕의 형인 사마를 왕위에 앉힌 것이다. 졸지에 반란 아닌 반란을 일으키게 된 백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권력의 작용과 반작용이 왕의 측근이자 충신이었을 그를 반역자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반란을 진압한 것이 23년 전인 서기 478년 대두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목숨을 잃은 해구와 같은 집안인 한솔 해명이라는 것이다.
정명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