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외국산 車·부품에 '25% 관세 폭탄'
현대차 "투자 확대·가격 동결로 관세 대응"
배터리 3사, 현지 생산 확대…관세 부담 줄인다
정부도 총력 대응…긴급 금융지원·협의체 가동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현실화되면서, 국내 자동차와 배터리 업계가 미국 현지화 전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업계는 북미 생산 확대와 공급망 재편을 통해 직격탄을 피하고,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겠다는 전략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현지시간)부터 한국산 자동차에 25% 관세가 부과된 데 이어, 내달 3일부터는 150개 자동차 부품에도 관세가 적용된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와 배터리 업종은 관세 충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는 대미 수출의 35.7%를 차지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 품목으로, 미국은 한국 자동차 수출 1위 시장이다. 배터리 업종도 마찬가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기차용 리튬이온배터리 대미 수출액은 5225만 달러에 달했다.
이런 흐름은 국내 기업 체감에서도 드러난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기업 60.3%가 미국발 관세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답했으며 특히 배터리(84.6%)와 자동차·부품(81.3%) 업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미국에 진출한 국내 완성차 업체에 부품과 소재를 납품하는 협력사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분석된다.
자동차 관세 정책 시행으로 현대차·기아는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대미 수출량은 총 101만5005대로, 현대차가 63만7638대, 기아가 37만7367대를 수출했다. 대당 평균 가격을 4000만원으로 어림잡아 계산하면, 관세로만 약 10조원에 달하는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IBK경제연구소는 미국의 25% 자동차 관세로 인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올해 18.6%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막대한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내 투자 확대와 가격 동결 등 다각적인 대응책을 꺼내 들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향후 4년 동안 210억 달러(약 31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1986년 미국 진출 이후 최대 규모이자 현대차 시가총액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다.
가격 전략도 병행한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약 두 달간 모든 차종의 소비자 가격을 동결하며 시장 점유율 방어에 나섰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2025년 6월 2일까지 권장소매가격(MSRP)을 인상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소비자들의 가격 불안을 잠재우고 구매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권장소매가(MSRP)는 제조사가 판매를 직접 담당하는 소매업자에게 제품을 공급할 때 설정해 권고하는 소비자 가격 수준을 일컫는다.
생산 전략 역시 적극 조정 중이다. 현대차·기아는 관세 부담과 수익성 하락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내 생산 차종을 재편하고, 공급망 재구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에서 인기가 높고 수익성이 좋은 하이브리드차와 SUV 등 고부가가치 차종은 현지에서 집중 생산하고, 관세가 붙더라도 비인기 차종이나 저가 차종은 수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우리는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 가능성에 대해 불확실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하고자 한다"며 "MSRP 약속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훌륭한 차량을 제공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의 일부"라고 언급했다.
배터리 3사도 미국 현지화를 통한 대응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지 생산 확대, 생산라인 전환, 고성능 제품 개발 등을 통해 관세 부담을 완화하고 북미 시장 입지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지 생산 확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집중,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병행하며 대응에 나섰다.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의 생산 계획을 1년 앞당겨 현지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내는 한편, 미국 주택용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에너지 관리 업체 델타 일렉트로닉스와 올해부터 5년간 약 4기가와트시(GWh) 규모의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애리조나주에서는 원통형 배터리 전용 공장을 건설 중으로, 현재 공정의 절반 이상이 완료됐다. 내년 중순 시제품 생산을 시작하고 연말 양산을 목표로 한다. 차세대 배터리로 꼽히는 46파이(46시리즈) 제품 개발도 완료해 테슬라에 시제품을 공급하고 성능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SK온은 '현대차 맞춤형 공급'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 'SK배터리아메리카(SKBA)' 공장 일부 라인을 현대차그룹 전용 라인으로 전환하고 양산에 돌입했다. 현대차그룹이 조지아주 메타플랜트(HMGMA) 준공을 마친 만큼, SK온도 맞춤형 공급 체제를 본격화했다. SK온은 현대차 아이오닉 시리즈, 기아 EV6·EV9 등 그룹 내 주력 전기차 모델에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고 있다.
삼성SDI는 고성능 원통형 배터리 양산으로 북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인 46파이 제품 양산을 시작해 미국 고객사에 초도 물량을 공급했다. 이 배터리는 기존 소형 원통형 배터리보다 에너지 용량이 약 6배 향상돼 전기 스쿠터 등 마이크로모빌리티 제품에 주로 사용될 예정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 중에서는 삼성SDI가 46파이 배터리 양산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정부도 업계 지원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 업계부터 긴급 금융 지원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번 주 산업경쟁력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미국 관세 충격을 먼저 받은 자동차 업계에 대해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약 3조 원 규모의 긴급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는 자동차 업계와 배터리 업계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과 릴레이 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산업부는 업종별로 미국 관세 조치가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기업별 대응 상황을 공유하면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업계와의 간담회를 통해 배터리 산업 지원 방안도 논의 중이다.
정부는 업계 피해 최소화를 위해 관세 대응 협의체도 가동할 방침이다. 미 상무부와 USTR(미국 무역대표부) 등을 상대로 관세 면제 또는 완화 협상을 병행하는 한편, 관세 피해 기업 지원과 시장 다변화 방안도 함께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