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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일easy] 하이브리드 없으면 명함도 못 내미는 자동차 시장


입력 2024.12.04 06:00 수정 2024.12.04 06:00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현대차‧기아 주력 모델, 하이브리드 판매 비중 절반 넘어

르노코리아, 중견 3사 중 유일 내수판매 호조…'그랑 콜레오스' HEV 덕

하이브리드 붐 배경은 전기차 캐즘…가격 대비 연비절감 효과 고려해야



산업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혹은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슈의 전후사정을 살펴봅니다. 특정 산업 분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나 소액주주, 혹은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들이 대신 공부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AI 이미지.

#포지티브적 해석 : 하이브리드차를 준비한 자, 불황도 캐즘도 두렵지 않다.

#네거티브적 해석 : 본전 뽑으려면 10년 넘게 몰아야 되는 데 괜찮으시겠어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최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전기차 시장이 한참 열리다 잠깐 ‘삐끗’하는 사이에 무섭게 치고 올라온 ‘기회주의자’ 같은 모습입니다.


세계적으로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높은 가운데, 특히 국내 시장에서는 하이브리드차가 상한가를 치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하이브리드차를 없어서 못 살 정도고 자동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 모델 보유 여부에 따라 실적이 크게 엇갈립니다.


11월 판매실적을 볼까요. 현대차는 국내 시장에서 6만3170대, 기아는 4만8015대를 각각 팔았습니다. 전년 동월 대비 줄었다고는 하지만, 국내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평타’는 쳤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워낙 판매량이 많으니 좀 줄어도 티가 안 납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나머지 중견 완성차 3사의 실적입니다. 르노코리아는 전년 동월 대비 무려 289.4%나 증가한 7301대를 판매한 반면, 같은 기간 KG 모빌리티는 34.5% 감소한 3309대를 파는 데 그쳤고, 한국GM도 39.6% 감소한 1821대의 판매량에 머물렀습니다. 국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완성차 업체로서 월 2000대도 안되는 내수 실적은 처참한 수준이죠.


희비를 가른 결정적 요인은 하이브리드 모델의 보유 여부입니다. 중견 3사 중 KG 모빌리티와 한국GM은 하이브리드가 없는데, 르노코리아는 그랑 콜레오스와 아르카나까지 2종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랑 콜레오스. ⓒ르노코리아

올 하반기 출시돼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신차 두 종을 꼽는다면 단연 르노코리아 그랑 콜레오스와 KG 모빌리티의 액티언일 겁니다. 하지만 두 차의 성적표는 극단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그랑 콜레오스는 출시 첫 달인 9월 3900대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데 이어 10월 5385대, 11월 6582대까지 판매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반면 액티언은 출시월인 8월 780대에서 9월 1686대로 느는가 싶더니 10월 1482대, 11월 693대로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두 차의 희비를 가른 것 역시 하이브리드 모델입니다. 그랑 콜레오스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먼저 출시한 덕에 차의 이미지 자체가 하이브리드로 각인이 됐습니다. 실제 판매량도 하이브리드가 압도적입니다. 전체 누적 판매의 96%가 하이브리드였고, 가솔린 터보 모델이 합류한 11월 실적만 봐도 하이브리드가 92%를 차지했습니다.


이 정도면 가솔린 터보 모델만 운영하는 액티언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이유가 극명해집니다.


현대차와 기아 역시 하이브리드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현대차의 인기 차종인 준대형 세단 그랜저는 11월 5047대가 팔렸는데, 그 중 절반 가까운 2367대가 하이브리드 모델이었습니다. 연간 누적 판매량에서는 하이브리드 비중이 절반을 넘습니다.


중형 SUV 투싼도 하이브리드 비중이 절반 이상이고, 중형 SUV 싼타페는 월 7000여대의 판매량 중 하이브리드가 5000대를 넘을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기아의 중형 SUV 쏘렌토도 하이브리드와 가솔린‧디젤 비중이 7대 3 정도고, 미니밴 카니발도 하이브리드가 절반가량을 차지합니다. 준대형 세단 K8 역시 하이브리드 모델이 주력입니다.


싼타페 하이브리드. ⓒ현대자동차

현대차‧기아는 일본 토요타가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차를 만들어 시장 개척에 나선 초기부터 이 시장에 뛰어들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이 시장을 일궈냈습니다. 그 노력의 결실을 지금 톡톡히 보는 거죠.


토요타는 전기차 붐이 한창일 때 ‘전기차 지각생’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하이브리드 붐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됐습니다. 현대차‧기아는 하이브리드차는 물론 전기차, 수소차까지 적극적으로 개발해 놓고 적기에 신모델을 내놓으며 ‘모든 경우의 수’에 빈틈 없이 대비하는 수완이 놀랍습니다(심지어 디젤엔진에 대해 질소산화물 배출을 환경오염 요인에서 배제한 ‘클린 디젤’이라는 허황된 수식어가 붙었을 때는 디젤 승용차도 잘 만들어 팔아먹었습니다).


여담이지만, 토요타와 현대차‧기아가 하이브리드 시장 개척을 위해 박 터지게 노력할 당시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시각이 회의적이었습니다. 내연기관차에서 바로 전기차로 가면 될 것이지 굳이 하이브리드라는 중간 단계를 거치는 것은 헛고생이라는 입장이었죠.


르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2013년 르노코리아(당시 르노삼성)가 르노의 전기차 플루언스 Z.E.의 한국 버전인 SM3 Z.E.를 출시했을 때 회사 관계자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직행하는 게 르노 본사의 친환경차 전략으로, 하이브리드차 개발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의 르노코리아는 모두들 아시다시피 하이브리드차가 없었다면 내수 시장에서 손가락만 빨 형편인데, 불과 10년 사이 입장이 크게 바뀐 것 같군요.


요즘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에서 ‘마일드 하이브리드’라는 명칭으로 하이브리드 붐에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고 있는데, 사실 이 기술이 들어간 차는 제대로 된 하이브리드차가 아닙니다.


흔히 알려진 하이브리드차는 엔진 구동이나 회생제동을 통해 충전된 배터리로 전기모터를 돌려 직접 자동차를 구동하는 게 (일부 구간이라도) 가능한 차를 말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연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겁니다. 정식 명칭은 ‘하드타입 하이브리드’입니다.


하지만 벤츠나 BMW의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모터의 힘만으로 자동차를 구동하지 못합니다. 엔진 구동을 돕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 적용 여부가 연비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진 못합니다.


티맵 모델들이 전기차 충전배달 서비스 이용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배달 서비스가 나온다는 건 여전히 일상에서 전기차 충전이 불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티맵모빌리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최근 들어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전기차가 ‘삐끗’하는 상황이 가장 큰 배경이 됐습니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려면 먼저 새로운 기술을 먼저 접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 이들, 이른바 얼리어답터들이 초기 수요층이 된 후, 이들을 통해 기술이 어느 정도 검증이 되면 일반 대중 소비자들로까지 수요층이 확산돼야 합니다.


전기차 시장은 얼리어답터 단계에서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대중 소비자로의 확산 단계에서 막혔습니다. 이젠 흔한 용어가 된 캐즘(Chasm, 일시적 수요정체)이 이런 현상을 의미합니다.


캐즘 현상은 초기 구매자들이 느끼는 불편에서 비롯됩니다. 어차피 열릴 전기차 시대, 남보다 앞서 뛰어들었는데, 막상 사서 몰고 다니다 보니 할부금 부담에 허리는 휘고, 충전도 불편하니 영 만족도가 떨어지는 거죠. 게다가 전기차 배터리 화재 사고(일반 차 화재에 비해 유난히 크게 부각되는) 소식이 잇따르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이웃들 눈치도 보이니 이건 아니다 싶은 이들이 하나 둘씩 나오는 겁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누가 전기차를 사겠습니까.


그런데, 전기차를 사려다 포기하고 방향을 튼 사람들은 왜 일반 내연기관차가 아닌 하이브리드를 목적지로 잡은 것일까요.


국내 소비자들은 외부의 시선에 민감합니다. ‘하차감(차에서 내렸을 때의 주위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느낌)’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가 생긴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미 내연기관차가 소멸하고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임이 예고됐는데, 전기차 사는 게 찜찜하다고 내연기관차를 산다? 당장 주변으로부터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올 겁니다. “너 그 차 왜 샀어?”


더구나 자동차는 한 번 사면 길게는 10년씩 사용하는 고가의 내구재입니다. 사서 타고 다닌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금의 노후 디젤차가 받는 각종 규제와 눈총을 받게 된다면, 견디다 못해 처분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중고가가 똥값이 된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하이브리드차의 본원적 경쟁력인 높은 연비와 그로 인한 친환경적 특성도 고려 대상 중 하나겠죠. 그건 원래부터 좋았던 거라 최근 갑자기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에 대한 답이 되진 못하겠지만.


더 뉴 스포티지. ⓒ기아

혹시 하이브리드차 구매 이유가 오로지 ‘연비’라면 한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하이브리드차는 비싸다는 겁니다. 연료비를 아낄 수 있으니 충분히 상쇄되지 않느냐고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난달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출시된 기아 ‘더 뉴 스포티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6 가솔린 터보 모델 기본트림인 프레스티지 가격은 2836만원입니다. 동일 배기량 엔진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한 1.6 가솔린 터보 하이브리드 모델 기본트림인 프레스티지 가격은 3458만원으로 가격 차이가 무려 622만원에 달합니다.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를 샀을 때 얼마나 타고 다녀야 가솔린 모델과의 가격차만큼의 기름 값을 아껴 본전을 뽑을 수 있을까요.


스포티지 가솔린 모델의 연비는 12.3km/ℓ입니다. 한 해에 1만5000km를 주행한다고 했을 때 소모되는 연료는 1220ℓ입니다. 3일 현재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격 1640원으로 계산하면 연료비는 총 200만800원이 듭니다.


스포티지 하이브리드 모델의 연비는 16.3km/ℓ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했을 때 연간 소모되는 연료는 920ℓ고, 연료비는 150만8800원입니다.


1만5000km는 택시가 아닌 일반 승용차로는 상당한 주행거리입니다. 국내 차량 평균 수준을 넘어섭니다. 하이브리드차로 이정도 거리를 돌아다녀야만 가솔린차에 비해 연간 50만원을 아낄 수 있습니다.


스포티지 하이브리드와 가솔린의 가격차 620만원을 상쇄할 만큼 연료비를 아끼는, 즉 본전을 뽑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무려 12년입니다. 세제혜택과 각종 친환경차 혜택까지 감안한다면 조금 줄어들 수도 있겠군요.


연비만을 보고 하이브리드차의 높은 가격을 감수할 생각이라면, 차를 사서 일 년에 어느 정도 주행할 것인지, 몇 년을 타고 다닐 것인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 물론 화석연료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여 환경 보호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이라면 하이브리드차 구매는 적극 추천합니다. 연간 300ℓ의 휘발유를 덜 태운다는 것은 환경에 크게 기여하는 일이니까요.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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