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韓탄핵, 기각5·각하2·인용1 '기각' 되자
野 당혹…李 "헌법 고의로 어겨도 용서 되나"
김부겸 "섣부른 탄핵, 무거운 책임감 느껴야"
與 "탄핵중독 경종…국민에 석고대죄해야"
헌법재판소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한덕수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을 기각했다. 민주당이 주장한 '내란 방조·묵인' 의혹에 있어 중대한 탄핵사유로 볼 수 없다는 게 재판관 과반의 의견이다. 당초 인용을 확신하며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겠다던 민주당은 정반대의 결론에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며 태도를 바꿨다.
한 권한대행 탄핵 기각으로 헌재에 걸린 민주당의 탄핵소추 전광판은 '9전 9패'로 기록됐다. 그동안 정치권의 줄탄핵 비판을 부정하던 민주당은 '탄핵 남발' 꼬리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원내 과반 의석으로 윤석열정부에 대한 탄핵을 밀어붙이던 거대 야당이 윤 정부 출범 3년 만에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4일 서울 광화문에 설치된 천막당사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대행에 대한 헌재의) 결정이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명백하게 도의적으로 헌법기관 구성이라는 헌법상의 의무를 어긴 행위에 대해 '탄핵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판결을 국민이 납득할 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은 형법 조항이든 식품위생법 조항만 어겨도 다 처벌 받고 제재를 받는데 (한) 권한대행은 헌법이 정한 '헌법기관 구성 의무'를 명시적으로, 의도적으로 악의를 갖고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데도 용서가 되느냐"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날 헌재는 한 대행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87일 만에 기각했다. 재판관 8명 중 5인(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김복형)이 기각, 2인(정형식·조한창)이 각하, 1인(정계선)이 인용 의견을 냈다. 재판관 다수가 민주당이 한 대행 탄핵사유로 지목했던 △비상계엄 방조·묵인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미임명 △상설특검 임명절차 미진행 등을 '위헌'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이 지정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 비상계엄) 사건이 그렇게 복잡하냐. 명백한 군사쿠데타, 헌법위반과 법률위반에 대해 심리가 종결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헌재가) 아직 선고기일조차 잡지 않고 있다"면서 "헌재가 선고 기일을 계속 미루는 것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찬대 원내대표도 "(헌재는) 헌법에 따라 해야 할 일을 제때 하길 바란다. 이제 내란 수괴 윤석열만 남았다"며 "헌재가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즉각 내려줄 것을 요청한다. 오늘 바로 선고기일을 지정하고 내일 당장 선고를 내려달라. 재판관 만장일치의 윤석열 파면으로 헌재가 헌법 수호의 최고기관임을 증명해주길 바란다"고 거들었다.
급기야 이언주 최고위원은 "필요하다면 여야 국회의원들이 모두 총사퇴하고 총선을 다시 치르자"라며 "나라가 이런 내란 행위조차 진압하지 못하고 질질 끌면서 면죄부를 주는 반헌법적 상황으로 계속 간다면 그런 나라에서 배지를 달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고 개탄했다.
당내에선 한 대행 기각보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에 더욱 촉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친명(친이재명)계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계엄 당시 한 대행이 저지른 마은혁 재판관 미임명 등 위법 행위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라면서도 "당 일부에선 당황스럽다는 말도 나왔지만, 지금은 윤석열 탄핵을 앞두고 오히려 차분하고 덤덤해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물론 헌재가 한 대행 탄핵을 인용할 것이란 예상이 좀 더 높았지만, 기각을 전혀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한덕수 기각 결정으로 저쪽(극우) 세력의 마음을 좀 가라앉혀놓고 윤석열 탄핵을 인용하지 않겠느냐. 한덕수 기각은 윤석열 탄핵 인용을 위한 '안전장치' 정도로 생각한다"고 추정했다.
비명(비이재명)계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주도해 국회를 통과시킨 13번의 탄핵소추안 중, 이날까지 무려 9번이 기각된 데 대한 '책임론'도 분출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페이스북에 "(한 대행에 대한) 섣부른 탄핵이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며 "민주당 지도부가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국민이 주신 힘을 절제하지 못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비명계 원외 모임 '초일회' 간사인 양기대 전 민주당 의원은 "헌재가 9번째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이 대표와 민주당의 강력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탄핵은 국회의 최후의 보루로써 작동하는 것이지 정치적 혹은 감정적 탄핵을 일삼는 것은 공당으로서, 국회 다수당으로서의 태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국민 감정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탄핵심판 결과는 '9대 빵(0)'이 됐다. 지금은 제1야당부터 국민 선동을 멈추고, 차분하게 사법적 절차를 지켜보며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며 "이 대표 방탄이 아무리 시급해도 장외로 몰려나가는 게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냐. 어버이 수령 방탄에 대한 지독한 병적 집착"이라 일갈했다.
국민의힘은 한 대행 기각 결정 이후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의 탄핵 남발에 대한 총공세를 퍼부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탄핵안이 처음부터 헌정 파괴 목적의 정략적 탄핵이었음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며 "9전 9패. 헌정사에 길이 남을 기록적 패배"라고 냉소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재명 세력의 입법 권력을 동원한 내란 음모에 헌법의 철퇴를 가했다"며 "이 대표는 뻔히 기각될 것을 알면서도 오로지 본인의 정략적 목적을 위한 졸속 탄핵으로 87일이나 국정을 마비시킨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민주당 내에선 한 대행 탄핵기각을 계기로 기존의 '탄핵 강경론'이 '신중론'으로 바뀌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민주당 다른 초선 의원은 "한 대행 기각 이후 탄핵에 이전보다 신중을 기하자는 목소리가 많아졌다"며 "최상목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앞으로의 많은 부분들을 전반적으로 포함해 고려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