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여러분, 이런 정치풍자는 나쁜 정치만큼 해롭다
<하재근의 이슈분석> 코미디·드라마의 정치풍자 싸잡아 조롱 관성 못 벗어나
<하재근의 이슈분석> 코미디·드라마의 정치풍자 싸잡아 조롱 관성 못 벗어나
사기꾼이 국회의원이 된다는 내용의 ‘국민여러분’이 끝났다. 외부자가 국회에 진입한다는 설정을 통해 정치판을 국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정치인들의 행태를 통렬하게 풍자하는 극이라고 기대됐던 작품이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끝났다.
이 작품의 정치 풍자는 선거판에서부터 시작됐다. 사기꾼이 어떻게 국회의원이 되냐며 주저하는 주인공에게 사채업자와 중진 의원은 ‘사기꾼과 국회의원은 비슷하다’고 설득했다. 마침내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고 보니 출마한 정치인들이 모두 거짓말로 선거에 임하고 있었다. 무조건 지역민이 원하는 말만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양머리 걸어놓고 개고기 파는 거야, 선거라는 게. 누가 더 혼이 담긴 구라를 치느냐 그게 바로 당락의 핵심이야’라며 정치권 입문 절차인 선거부터 거짓말, 사기로 출발하는 것이 곧 정치라는 식이다.
선거를 통과해서 국회의원이 되고 보니 자고 일어나면 하는 일이 당 별로, 계파 별로 패를 갈라 싸우는 일이다. 그 사이사이에 스폰서 민원도 해결해준다. 국민을 위한 진심 같은 건 없다. 주인공은 싸움만 하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을 질타하면서, 호텔방에 가둬놓고 결과물을 내도록 강제하거나 어린 아이들 앞에 가서 싸우라고 내몰기도 했다. 아이들 보여주기 부끄러운 모습이니,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이야기다.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청문회도 당리당략에 따른 거래 대상에 불과했다. 국회의원들은 공천 때문에 당의 눈치만 보면서 지시대로 움직이는 거수기 신세였다. 후보자를 공격하라면 공격하고 통과시키라면 통과시켰다. 국민 눈치를 보는 국회의원은 없었다. 한 마디로 국회의원은 사기꾼보다도 더 믿지 못할 존재였다.
그러면서 극은 ‘정치를 외면하면 그대로 살게 된다’고 했다. 세상의 부조리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치가 ‘고이고 고여서 썩은 물’이니 이대로 두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고,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뜻은 좋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드라마는 정치를 국민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한다는 게 문제다. 정치인 모두를 사기꾼보다 못한 존재로 싸잡아 폄하하면서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풍자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한 마디로 양비론. 이 당 저 당할 것 없이 모두 똑같이 썩었다는 논리다. 그래서 언제나 정치인 모두가, 국회의원 모두가 조롱 대상이 된다.
이런 시각으론 정치인들 사이의 차이를 분별할 수 없게 된다. 사익만을 위해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공익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정책에 따라 공익성이 강한 정책도 있다. 이런 것들을 모두 세심하게 구분해야 한다.
정치인의 싸움도, 자기들 이익을 위한 싸움도 있지만 국가를 생각하는 대의에 입각한 싸움도 있다. 또, 각각 대변하는 계층이 달라서 그 이해관계를 두고 대립하기도 한다. 이것들을 모두 싸잡아 싸움을 위한 싸움이라고 조롱하는 게 우리 정치풍자의 관행이었다.
국회라는 곳이 원래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대변자들을 한 자리로 보내 싸우라고 만든 곳이다. 안 싸우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어떤 내용으로 누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서 싸우느냐를 따져야지, 무조건 싸우지 말라고 하는 건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100% 이상적인 정치판은 없다. 현실은 언제나 남루하다.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공익을 생각하는 정치인을 찾아내 격려하고, 주장과 주장 가운데 국민의 이해가 반영된 주장을 찾아내 지지해주는 것이 시민이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처럼 정치인, 정치판 전체를 싸잡아 조롱하는 정치풍자는 국민을 그저 정치로부터 등 돌리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결국 정치가 ‘고이고 고여서 썩은 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과거 독재 시절, 대중문화가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 못하던 때엔 이렇게 정치 자체를 싸잡아 조롱하는 풍자도 의미가 있었다. 그때는 국민들이 그런 풍자로도 통쾌해했다. 지금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정치풍자도 시대에 맞게 발전해야 한다. 이젠 정치인의 차이, 각 정책의 차이를 구분해야 하는 시대다. 어느 정치인이 누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서 싸우는지, 각 정책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런 걸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에 대한 관심이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코미디, 드라마의 정치풍자는 여전히 독재 시절 정치를 싸잡아 조롱하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이번 ‘국민여러분’도 그런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이런 식의 정치풍자라면 안 하는 게 더 낫다. 이런 정치풍자가 조롱하는 나쁜 정치만큼이나 그런 태만한 정치풍자도 우리 공동체에 해로운 법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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